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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별세

재계 2위까지 우뚝 ‘세계경영’ 신화…한국경제 발전 성공 주역

김길태 기자   |   등록일 : 2019-12-10 11: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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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인회 등 국내 경제신화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고 김우중 전 회장은 지난 1967년 31살 대우실업을 창업해 불과 10여 년 만에 국내 최고 재벌로 성장했다.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분식회계를 주도했다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한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우중 전 회장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연구회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이후 건강이 나빠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다. 이후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해 장기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에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속성장 ‘신화’와 비극적 ‘몰락’ 

국내 계열사 수 41개, 연간매출 62조 원, 자산 83조 원, 자본금 18조 원, 해외법인 수 396개. 지난 1999년 해체 전 대우그룹의 경제적 위상을 드러내는 지표다. 대우그룹은 창립 직후부터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한때 재계 2위에 오르는 등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인해 그룹 해체라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우중 전 회장은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1967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자본금 500만 원, 직원 5명으로 출발한 대우는 1970년대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급속히 발전했고,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다. 특히 당시 정부가 주도하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발판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1970년대 고속 성장을 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아 온 김 전 회장은 본격적으로 회사 몸집을 불려 1982년 모기업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다져나갔다. 또한 자동차, 가전 사업에도 진출해 현대, 삼성, 럭키금성(현 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1993년 김 전 회장은 그룹 운명의 일대 전환점이 될 ‘세계경영’을 선포하며,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선다. 당시 대우가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공산권 국가 등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대우그룹은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했고, 개발도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수월하게 이뤄졌다.

대우자동차는 해외에서 높은 실적을 기록하며, 150여 개에 불과했던 해외 현지법인이 1998년 396개로 급증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당시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우그룹의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고속 성장은 대한민국과 해외 경제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대우그룹의 행보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차입경영으로 성장해왔던 대우의 경영여건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와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인한 부작용으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당시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부정한 기업인’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이는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김 전 회장 및 대우그룹 임원들의 분식회계 등 비위행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 됐다.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자료=대우세계경영연구회]

그는 베트남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지만 건강악화로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다 지난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됐고, 17조 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과 세금을 내지 못하고 1년여 투병 생활을 하다 결국 생을 마감했다.

김 전 회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지난해 3월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행사가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생각했던 ‘세계경영’은 대우그룹의 이념이자 모토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펴 낸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지금도 회자된다. 김우중 전 회장에 평가는 엇갈리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도전자’, ‘개척자’로 불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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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t0404@urban1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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