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분포도/자료=기상청]
지난 12일 오후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1978년 기상청의 계기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이번 지진은 영남 지역 거의 전역에서 건물의 흔들림이 감지되고 멀리 수도권과 호남 지역에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규모 6.0을 넘는 지진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재해 담당 부처인 국민안전처와 원자력발전소를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가 보여준 안이한 대응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진대책을 살펴보면, 지난 1986년 내진설계가 「건축법」에 규정되고 1988년부터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세부사항’이 규정돼 의무화됐다. 1995년 일본 고베 지진을 계기로 「자연재해대책법」에 지진조항을 보강하고 지진방재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지난 2008년 3월에는 단일법으로 「지진재해대책법」을 제정해 국가와 시설물 관리기관의 지진방재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에 규모 5.8의 본진과 430회가 넘게 여진이 지속되고 있는 경주 지진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지진대책이 역부족이었음을 말해준다.
서울 초고층 건물, 대부분 지진 취약지역에 위치
서울에 위치한 초고층 건물 20개 중 19개가 한강 주변의 지진취약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경주에서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건축물의 내진성 확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지진 재난 현장조치 행동메뉴얼‘과 ‘서울시 내진 적용 현황’에 따르면 서울 한강 주변지역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강북지역은 지반이 바위로 구성돼 지진에 비교적으로 잘 견딜 수 있지만, 한강 주변지역은 상당수가 지진에 취약한 표토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진 의원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 상당수가 한강 주변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물론 서울에 위치한 초고층 건물 대부분이 진도 5.5 이상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한강 주변지역은 지반운동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진 설비 등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의원은 “인구 천만 명이 거주하는 서울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큰 규모의 지진이 닥친다는 것만으로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며 “초고층 건물 등 건축물의 내진성 확보뿐 아니라 신속한 대피시설 등 실효성 있는 지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원전 50㎞ 이내 규모 2.0 이상 지진 428건 발생
국내 원자력발전소 50㎞ 이내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 수는 총 428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국내 기술로는 기존 원전의 내진 보강을 규모 7.5로 상향 조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원전 24개의 내진성능을 현재 규모 6.5에서 7.0까지 견딜 수 있도록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4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기상청 관측 이후 지난달 22일까지 국내 4개 원전본부의 50㎞ 이내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총 428건이다. 이 가운데 월성원전 인근 지진이 208건(48.6%)으로 가장 많고 고리원전은 139건(32.5%)으로 집계됐다. 한울원전과 한빛원전은 각각 51건(11.9%)과 30건(7.0%)으로 뒤를 이었다. 월성원전은 지난 9월 12일 경주 강진 이후 여러 차례 여진이 이어지면서 지진 발생 수가 늘었다.
원전과 진앙 간 거리를 살펴보면 21~30㎞가 179건(41.8%)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41~50㎞(167건, 39.0%), 31~40㎞(58건, 13.6%) 순이었다.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의 직선거리는 약 45㎞다. 국내에서는 두 원전본부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지진 규모별는 2.0대가 357건(83.4%)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3.0대(62건, 14.5%), 4.0대(5건, 1.2%)가 뒤를 이었다.
김 의원실은 내진 설계기준을 규모 7.5로 상향할 수 있는지 한수원에 문의한 결과 “현재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내진 설계기준을 7.5로 상향 조정하려면 새로운 노형을 신규 개발하는 수준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한국형 신형 원전인 1400MW급 원전(APR1400) 노형인 신고리 5·6호기에 이같은 기준을 상향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현재 세계에서 내진설계 규모 7.5 이상으로 상업 운전하고 있는 원전은 일본 하마오카 원전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디아블로 캐년 원전 등 두 곳이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등 관계기관은 이번 경주 지진을 계기로 전국의 활성단층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고, 내진설계 규모 7.5의 원전을 건설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교량 중 26% 내진설계 미반영
서울 시내에 내진설계가 안된 교량도 1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한남1고가교 등 1종시설물도 5곳이나 포함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4일 국회 국민의당 안전행정위원회 권은희 의원은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시내 교량 362곳 중 26%(95곳)가 내진설계 미반영 상태다. 이 중에는 1종과 2종 시설물이 각각 5곳, 14곳이 있었다.
현행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1종 시설물은 상부구조형식이 현수교, 사장교, 아치교 및 트러스교인 교량, 최대 경간장(교각과 교각 사이의 길이) 50m 이상 교량, 연장 500m 이상 교량, 폭 12m 이상이다. 연장 500m 이상인 복개구조물로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교량으로는 영동6교, 염창IC교, 홍제천고가교, 신정교, 한남1고가교가 이에 포함된 것이다.
권은희 의원은 “재난발생 시 다른 곳으로 대피할 수 없는 교량의 특성을 고려해 내진설계 반영을 비롯한 안전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내진설계 미반영 교량은 1996년 관련 규정이 도입되기 이전에 모두 설치된 것”이라며 “시 재정여건을 고려해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보강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전국 고속도로·국도 교량 1,321곳 지진 ‘무방비’
서울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고속도로와 일반국도 교량 1,300여 곳이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량에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아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용기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내진 미반영 교량 현황’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에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교량은 1,321곳(고속도로 360곳·국도 961곳)에 달했다. 내진설계 미반영 고속도로 교량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도가 115곳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남(53곳), 경남·경북(30곳), 인천·강원(29곳) 순이었다. 충청권에서도 대전 4곳, 충남 12곳, 충북 25곳 등 총 교량 41곳의 내진성능이 미비한 상황이다.
국도 교량은 내진설계 미반영은 물론 노후화 문제도 심각했다. 내진불량 판정을 받은 961개 교량 중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교량은 165개(17.1%)에 이르는 상황이다. 노후화와 내진성능 미비가 겹친 위험교량 중 59곳(35.8%)이 경상권역(경북 36곳·23곳)에 몰려 있었고, 전라권역이 42곳(전남 20곳·전북 22곳)으로 뒤를 이었다. 충청권역에선 충남 12곳, 충북 18곳 등 교량 30곳이 위험교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속도로 교량은 물론 일반 국도 교량도 지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정용기 의원은 “최근 경주 지진사태를 계기로 삼아 전국 고속도로와 일반국도 교량 등 국토교통부 소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물에 대한 신속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며 “내진보강계획과 기준을 현실성 있게 재검토하는 등 철저한 안전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 아냐…
이번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오후 7시 44분 5.1 규모, 오후 8시 32분 5.8 규모로 그 파장이 서울까지 전달됐다고 한다. 경주시로부터 남남서쪽 9㎞ 지점에서 발생한 내륙형 지진이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주에서는 인명피해 48명, 재산피해 4,400여 건, 문화재 피해 60건이 발생했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확인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규모 7 이상의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진 전문가들도 견해를 달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진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진은 예측이 어려운 천재지변이다. 일본은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진을 정확하게 예보하고 경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진의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은 지진 예보·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자원으로 가장 효율성이 높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국가는 정확한 지진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의 제공을 통해서만 적절한 국민의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것은 바로 국민의 대처능력라고 한다. 가장 효율적인 대응책은 국민 모두가 지진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적절한 대처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