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바라지 골목 풍경/자료=서울시]
지난 5월 재개발 사업을 위한 강제집행으로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일대 일명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 사업이 지역의 역사·생활문화의 흔적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재개된다. 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 보존대책위’(대책위)와 ‘무악2구역 재개발조합’(조합)이 합의를 마치고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시는 옥바라지 골목 보존 방안에 대해 조합과 대책위 양측의 의견을 듣고 여러 분야 전문가와 숙의를 거쳐 역사·생활문화유산 남기기 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시는 조합 측의 경제적 손실 보전 요구와 역사적 공간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다는 대책위 의견을 모두 받아들였다.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대책위와 조속한 사업 진행을 주장해온 재개발조합 측이 합의에 이르러 양측의 갈등은 일단락됐다. 조합 측에게는 행정 지원을 통해 공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최대한 보전해주겠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대책위에게는 무악2구역과 독립운동 자취 등 옥바라지와 관련된 내용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옛길 살리고 건물은 이전 건축…기념관도 마련
시는 구본장여관 등 이 구역에 남아 있는 건물 일부를 인근으로 옮기거나 보관 중인 한옥 자재를 재활용해 옛 분위기를 살린 건물을 짓고,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기념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구역 안에 있던 기존의 옛길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일부 오래된 골목은 재개발 공사를 진행하면서 아파트 1층을 지나는 통로를 만드는 식으로 보존한다. 또 옥바라지 골목을 행촌권 성곽마을과 연계해 안산~서대문 형무소~무악2구역 행촌권 성곽마을~딜쿠샤~한양도성~돈의문 박물관 마을~정동으로 이어지는 역사탐방로도 조성한다. 진 본부장은 “조합과는 구체적 계획안을 협의하고, 공간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대책위도 참여해 함께 논의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사중단으로 조합이 본 경제적 손실은 행정적 지원으로 보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옥바라지 골목 ‘역사·생활문화유산 남기기’ 기본계획/자료=서울시]
대책위는 옥바라지 골목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옥바라지하는 등 독립투사와 가족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소설가 박완서가 어린 시절 거주했던 곳으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배경이자, 재개발 철거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행복동의 모델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5월 17일 재개발조합 측이 구본장여관을 강제집행하는 과정에서 철거업체와 반대 주민, 시민단체 관계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장을 직접 방문,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지난 6월 대책위와 조합을 차례로 면담했다. 지난 22일 조합 측이 강제철거를 재개하면서 물리적 충돌 우려가 커진 상태였다. 대책위의 박은선 활동가는 “서울시가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 인정과 보존 관련 부분을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으니 잘 이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재개발 현장의 역사성을 기념하고 그 방법을 시민들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외 사례 분석해 9월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 발표
서울시는 이번 옥바라지 골목 논란과 같은 정비사업 과정에서의 역사·생활문화유산 훼손을 막고자 추진 중인 240여 개 정비구역 사업을 전수조사해 사업시행 인가 전부터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보존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울러 무악2구역 사업의 진행과정을 백서로 남겨 향후 이 같은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무악2구역 공사중단에 가장 큰 원인이었던 재개발 사업의 강제철거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담은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해 9월 중 발표한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늦었지만 원만하게 합의를 완료한 조합과 대책위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그간 양측이 어려운 협의과정을 거쳤지만, 합의가 완료된 만큼 조속히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대문형무소 길 건너편에 있는 무악2구역 일대는 여관이 많은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에는 투옥된 애국지사 가족이,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인사 가족이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다고 전해져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조합 측은 일제강점기 이곳에 여관이 있었던 기록이 없다며 이곳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지난 20일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를 찾기 위한 ‘시민연구단 1차 조사발표회’를 여는 등 역사성 조명을 위해 노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