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가 도피 21년 만에 붙잡혔다. 지난 1998년 320억 원대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달아나 이후 행방이 묘연했는데, 파나마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것. 한때 재계서열 14위 한보그룹의 몰락으로 한보는 5조7000억 원의 빚을 안게 되면서 대한민국에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진원지가 됐다.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 회장 일가에 대한 재판이 재점화 될 것으로 보인다.
21년 만에 잡힌 한보 정한근…아버지 정태수 어디에?
한보사태를 책임져야 할 정태수 회장과 그의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정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가 해외에서 전격 체포돼 국내로 들어왔다. 도피 21년 만이다. 정한근 씨는 지난 22일 오후 1시30분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수사관들은 두바이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기에서 정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정씨의 도피행각은 치밀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는 그동안 신분을 세탁해가며 캐나다와 미국, 에콰도르 등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 정씨는 친구를 통해 지난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캐나다와 미국 두 나라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차례로 취득했고, 이 과정에서 이름을 다니엘 승현, 승현, 헨리, 다니엘 등으로 4번이나 바꿔왔다. 이는 정씨가 검찰과 경찰, 인터폴을 따돌리기 위해 사용해 온 이름이다.
지난 10달 동안 정 씨를 추적해온 검찰은 에콰도르 사법당국 등 해외 공조기관과 협조해 정 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출입국 내역을 재검토 하는 과정에서 최근 정씨가 에콰도르에 체류 중인 것을 확인했고, 검찰의 송환 요청에 에콰도르 정부는 지난 18일 정씨가 파나마를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간다고 통보했다. 검찰은 파나마에서 브라질 상파울루, 두바이를 거쳐 정 씨를 송환했다. 정씨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서울중앙지검으로 호송돼 그동안의 도피 경로 등 관련 수사를 받고 있다.
결국 정씨는 검찰에 체포됐고 완전 범죄를 꿈꿨던 그의 도피행각은 막을 내렸다.
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진술하면서 ‘한보사태’ 장본인인 정태수 전 회장의 생사 여부와 소재 파악 등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를 넘어 정계까지 강타한 한보그룹 몰락
한보 사태의 중심 창업주 정태수 총회장
한보사태는 지난 1997년 1월 발생한 한보철강의 부도와 이에 얽힌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 대출비리사건에 의해 발생했다. 한보그룹 몰락과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의 어두운 면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한보그룹의 비리 전모가 드러나며 국민적 공분을 일었다.
한보그룹은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1923년생인 정 전 회장은 당초 사업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는 세무공무원에 종사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정 전 총회장은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한보는 건설업에 매진했고, 이로 인해 사세가 급격히 확장됐다. 지난 1978년 건설한 서울 강남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 ‘은마아파트’ 4400여 가구가 단 열흘 만에 분양되면서 세무공무원 출신 정 전 총회장은 성공한 사업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후 정 전 총회장과 한보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81년 한보그룹 설립과 동시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정 전 총회장은 사업분야를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보철강 설립을 통한 철강업계 진출이다.
지난 1984년 한보그룹은 부산 사상구 구평동 해안가에 위치한 10만 평 규모의 금호산업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철강업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한보그룹의 금호산업 인수를 두고 업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한보그룹이 금호그룹으로부터 섬유·철강 2개 업종 중 하나를 골라 인수할 수 있었으나 경기가 좋지 않던 철강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의 금호산업 인수 이유는 공장부지가 아파트 건설부지로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본래 철강사업보다는 해당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매각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보그룹이 금호산업을 인수하자 그간 바닥을 치고 있던 철강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더욱이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중국특수 등으로 국내외 수요가 살아나며 철강업은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알짜 사업으로 급부상했다.
한보그룹에 인수된 이 회사는 이후 한보철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고 한보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떠올랐다. 한보철강은 지난 1986년 수출 총 5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정 전 총회장은 철강사업 확장 계획에 나섰다. 바로 아산만에 76만 평을 매립, 당시 세계 5위 규모의 초대형 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사업을 구상, ‘당진제철소’ 건설을 계획했다.
당진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는 수많은 문제점을 내포한 채로 시작됐다 이는 제철소 부지매립 과정을 두고 불거진 특혜 논란과 자금조달 계획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당진제철소 건설은 터무니없는 ‘무계획’ 속에서 진행됐고, 사업 추진 핵심인 자금 조달은 철저한 부정과 불법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한보그룹은 부족한 자금을 금융권에서 끌어 모으며 당진제철소 건설을 추진했고, 급기야 5조원 이상의 부채를 떠안게 된다. 대출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한보그룹은 18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무리한 차입 경영을 되풀이하던 한보는 결국 지난 1996년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고, 지난 1997년 1월23일 주력기업이자 사운을 쥐고 있던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와해되고 만다.
무엇보다 한보그룹 몰락은 순히 개별 기업의 몰락이 아닌,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드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한보에 무작정 자금을 지원하던 금융권 역시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고, 이로 인해 재계에 대출해 준 금액을 서둘러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다른 대기업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후폭풍은 정·재계로 일파만파 번져나갔고, 결국 한보의 몰락은 외환위기의 신호탄이 됐다.
정 전 회장은 ‘한보사태’와 관련 수사를 받으면서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을 받던 중 치료를 핑계로 일본으로 출국했는데 12년째 행적을 감춘 상태다.
정태수 전 회장의 생사여부에 대해 검찰이 그의 생사나 소재를 대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 전 회장이 카자흐스탄에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진 키르기스스탄에 범죄인인도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상황. 정 전 회장은 1923년생으로,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96살의 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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