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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운하 인천터미널 공사현황/자료=국토교통부]
인천지하철 2호선, 대구지하철 3호선 공사에 이어 경인운하와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 공사까지 올해 벌써 4번이나 건설사 입찰 담합이 적발됐다. 지난 정부 말부터 4대강을 포함하면, 입찰담합 판정으로 내려진 과징금액만 3,8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 중에는 인천과 대구에서도 중복으로 적발돼, 공공공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건설사 입찰담합 비리에 건설사를 향한 비판의 여론은 거세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일부 건설사들은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어, 공공공사의 입찰담합 논란은 쉽게 잠들지 않을 전망이다.
인천·대구 이어 경인운하·부산 지하철 공사서도 담합
3년간 2조2500억원이 투입된 경인운하사업에서 건설사 입찰 담합이 적발됐다. 경인운하사업은 1995년부터 민자사업으로 진행되다가 2008년 12월,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행하는 정부재정사업으로 전환됐다. 이에 2008년부터 이 사업에 일명 ‘나눠먹기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적발된 건설사들은 입찰에 앞서 사전에 낙찰 회사와 들러리 회사를 결정하고, 저급 설계를 진행하거나 투찰가격을 높게 제출하는 등의 ‘짜고 치는 담합’을 실행했다. 특히, 경쟁사가 참여하려는 공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피해가는 방식으로 경인운하사업 전체 6개 공구 중, 4개 공구를 6대 대형 건설사들이 나눠 참여했다.
공구별로 보면, 제1공구는 현대건설, 제2공구는 삼성물산, 제3공구는 GS건설, 제5공구는 SK건설, 제6공구는 대우건설과 대림산업 간에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제1~5공구에 참여한 낙찰 회사들이 들러리를 세워 입찰에 참여했다. 경인운하사업 입찰담합에서는 저급설계, 교차 들러리역 수행, 설계도면 공유, 투찰 가격 합의 등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다양한 들러리 행태가 적발됐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정보교환 금지명령 및 향후 재발방지 명령을 내리고, 총 13개 사 시정명령 및 11개 사 과징금 총 991억 원(경인운하-984억 원), 동복계통 도수터널(7억 원)을 부과했다.
경인운하사업 담합에 이어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에서도 입찰 담합이 적발됐다. 4월에만 두건이 적발된 것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는 총 7200억원에 달하며, 2016년 준공예정인 공사이다. 이번 사건도 경인운하사업과 비슷하게 공사발주 정보에 따라 건설사들이 공구별(1, 2, 4공구)로 나눠 입찰에 참여하고, 각각 들러리 업체를 세우는 등의 담합이 이뤄졌다. 또한 설계담합, 가격담합 등을 통해 설계점수에서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게 하는 등 낙찰예정자가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들러리사와 낙찰예정사 간에 설계 자료 및 주요공법 등의 정보공유가 이뤄졌고, 사전에 정한 투찰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공정위는 입찰담합에 참여한 6개 건설사(현대건설, 한진중공업, 코오롱글로벌, 대우건설, 금호산업, SK건설)를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22억원을 부과했다. 들러리를 세워 낙찰 받은 3개 건설사(현대건설, 한진중공업, 코오롱글로벌)는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담합관행을 다시금 적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봤다. 특히, 6대 대형 건설사들의 ‘나눠먹기’ 담합의 실체를 규명·조치함에 따라 향후 건설입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또한, 공공입찰 담합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강화하고,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지하철 등의 공사에서 담합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이들 공사의 특징 때문이다. 경인운하를 비롯한 지하철 공사들은 대형공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 공구에 한 업체만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공구분할 담합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앞서 4대강사업도 이와 비슷한 구조로 공사구간이 길게 펼쳐져, 공구별로 건설사들이 나눠먹기 담합이 이뤄졌었다. 올해 초 정부가 ‘턴키입찰제도 운영 효율화 방안’을 내놓고, 대형사업의 턴키 발주물량과 시기를 조절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효과를 보기에는 담합의 뿌리가 깊다는 평가다. 이에 전문가들은 적발 건설사에 대한 과징금을 높이는 등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인다.
[자료=국토교통부]
정부와 건설사, ‘담합’ 놓고 시각 엇갈려
정부가 잇따른 건설사 입찰담합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계획을 밝힌 가운데, 건설사들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건설사들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법적 소송에 나설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번에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 받은 건설사는 대우건설이다. 경인운하 건으로만 164억4,000만원의 과징금이 결정됐고, 인천지하철 2호선 160억3,200만원, 대구도시철도 3호선 29억2,700만원으로 총 353억9,900만원이다. 이어 현대건설이 330억여원, SK건설이 316억여원, 대림산업이 272억여원, 포스코건설이 237억여원 등의 순으로 과징금이 부과됐다. 최근 물량난과 영업적자를 겪고 있는 일부 건설사들에게는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건설업계는 이들 사업이 국책사업이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여했는데 담합으로 몰고 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적발된 사업들이 3년 이상 된 일로, 당시 공공부문 사업에서는 눈치작전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정부가 요구한 입찰 방식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4대강 사업은 물론 경인운하 사업도 적자를 본 건설사가 많은데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공공공사 입찰 참여 제한 등 이중, 삼중 제재가 너무하다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건설사 수난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서울시가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입찰담합을 의심하며 12개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정위 역시, 고양삼송 수질복원센터 건설공사 및 운북하수처리장 증설공사, 인천 검단일반산업단지 페수종말처리시설 설치사업 등에 대한 담합 여부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공공발주의 혁신이 전제되지 않고, 건설업계의 일방적인 희생만 감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현재 공공시장은 발주기관, 건설업계 등 모든 참여주체들은 실적공사비, 계약심사제, 총사업비관리제도, ‘운찰제’로 전락한 입찰제도, 적자시공, 입찰담합, 기술영업, 불공정하도급 등의 문제점에 얽혀있다. 전문가들은 “예산절감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정부와 발주기관, 수주를 위해 저가투찰·입찰담합을 서슴지 않았던 건설사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결과물”이라고 꼬집는다. 이에 위태로운 공공시장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무엇보다 공공시장에서 정부 및 발주자들의 태도가 변화되어야 하고, 건설업계는 지난 과오에서 벗어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