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초기 세운상가 군/자료=서울도시연구원]
지난달,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를 최종 통과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운상가 일대의 계획이 확정됐다. 세운상가는 종로3가부터 퇴계로 3가까지 약 1㎞에 걸쳐 있는 거대한 상가 단지로, 국내 최초 주상복합건물이다. 또한 국내 전자산업의 시발점으로 근대화된 서울의 표상이었다. 이에 도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세운상가와 그 일대는 개발의 압력이 높았다. 하지만, 1980년대 ‘세운상가구역 재개발사업계획’ 이래 20여년이 지나도록 진행된 사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번 변경안은 기존의 전면철거 통합개발이 아닌, 소·중규모 분할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일부 상가주민들과 전문가들은 계획안의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소·중규모 분할개발 방식이 대규모 개발에 지쳐있는 도시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주목받고 있다.
최초의 주상복합건물, '세운상가'
세운상가 계획은 1966년 ‘대한극장 앞-청계천4가간 계획도로 정비방안’에서 시작한다. 세운상가가 위치한 종묘 앞은 한양 수립초기의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면서, 근대에 들어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던 장소였다. 당시 세운지구의 도로 정비와 무허가 건축물의 철거 및 재개발을 목적으로 정비방안이 추진됐다. 건축가 김수근이 도시 메가스트럭처개념을 도입했고, 국내 최초의 입체도시 개념이 적용됐다. 이에 종로3가와 퇴계로3가를 공중 보도로 연결하는 주상복합건물이 설계됐고, 8~17층짜리 건물 8개가 모인 상가가 1968년 완공됐다. 1층에서 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주거공간으로 이루어진 세운상가는 계획초기, 대대적인 분양광고와 홍보를 통해 점포와 아파트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인구가 이동하고,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건설되면서 세운지구는 급격한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또한 이때 세운상가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커졌다. 1㎞에 달하는 건축물이 주는 위압감과 북한산-비원-남산-용산-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의 단절, 서울도심 슬럼화의 주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1979년 면적 153,390㎡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도심형 산업기능의 도입을 통한 도심기능 활성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1995년 중구의 도시기본계획부터는 세운상가군을 철거하고, 녹지축 조성을 통해 남북 녹지축 복원이 제시됐다.
[세운녹지축 조감도/자료=서울도시연구원]
이 후 2004년이 되어서야 세운상가 1-9지구만이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을 통하여 ‘세운상가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 및 세운상가 4도시환경정비구역지정’을 통해 4구역 재개발이 추진됐다. 그리고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재개발의 윤곽이 드러났다. 하지만 2009년,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높이가 문화재청 심의로 하향(122m→62m)조정되면서 사업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게다가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한 재원조달에 문제가 발생했고, 상가군과 주변 구역의 통합개발 역시 주민간의 갈등을 야기했다. 결국 서울시는 2010년부터 촉진계획 변경을 검토해왔으며, 여러 차례 전문가 및 주민 상담을 통해 올해 2월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최종 결정했다.
소·중규모 분할 개발, 기대 속 우려도..
서울시는 촉진구역을 당초의 대규모 통합개발 방식에서 옛 도시조직을 고려한, 중소규모 분할개발 방식으로 추진한다. 도심의 재창조가 아닌 재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역사문화 도심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과도한 주민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이다. 이에 ‘활력 있는 창조문화산업중심지’로 조성한다는 비전 아래 ▲도심산업의 발전적 재편 ▲역사문화와 조화되는 도심관리 ▲점진적 정비를 통한 지역 커뮤니티 보전이라는 세 가지의 큰 정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건축물의 용도는 주거비율 50%이외에 오피스텔 10%이내를 추가로 허용하고, 주거비율의 30%이상을 60㎡미만인 소형으로 공급한다.
또한, 면적 3~4만㎡에 이르던 8개 구역을 소규모(1,000 ~3,000㎡)구역과 중규모(3,000~6,000㎡) 구역 등 총 171개 구역으로 나눈다. 다만, 향후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기존 도시조직을 보전하는 범위 내에서 분할 및 통합이 가능하다. 용적률은 600% 기준에서 소규모구역 및 4구역 100%, 중규모구역 200%이내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아울러, 기반시설 제공량에 따라 상한 용적률의 제한없이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건폐율은 도심 가로활성화를 위해 5층이하 저층부에 한해 최대 80%까지 완화한다. 서울시는 종전 계획에서 13~15%에 달하던 기반시설부담률은 소규모구역 평균 5%, 중규모구역 평균 11%로 대폭 하향 조정돼 주민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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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재정비촉진계획 구역도 및 현황/자료=서울시]
서울시는 존치되는 세운상가군은 올해부터 주민·전문가·공공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해, 도시재생을 위한 활성화 방안을 본격적으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많은 논의를 거쳐 현실에 맞는 계획수립을 위해 노력한 만큼 계획변경으로 세운지구에 대한 점진적 도시재생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정비사업은 서울시의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사업의 실현가능성을 높여 나갈 것이며, 존치하는 세운상가군 활성화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한편, 변경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이미 상권이 죽어버린 상가주민들은 외관만 바꾸는 리모델링으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지적한다. 세운상가는 70년대 후반부터 개발계획이 수립됐지만, 수차례 무산되면서 낡은 건물만 남아,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또한 먹고 살기 힘들어진 일부 상인들이 도청기나 몰래카메라, 도박장비 등의 불법장비 판매에 나서 세운상가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웠다. 이에 업계에 따르면 세운상가 점포 시세는 2009년 이전 3.3㎡당 6300만~6500만원 사이에서 현재는 4000만원으로 40% 가까이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역사문화 보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 있는 재개발계획이나 다른 대안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낡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세운상가 일대를 소규모로 개발할 경우, 도시가스, 전기통신,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 설치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단순한 리모델링으로는 슬럼화된 지역을 살릴 수 없다며, 차라리 종묘와 함께 연계해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변경안 발표 이후에도 주민반발은 여전하고, 2구역 개발위원회는 통합개발방식 적용을 위한 탄원서도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변경된 계획안이 사업시행 마지막까지 성공적으로 구현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