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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동주택의 역사③

‘제 3세대’ 공동주택의 성숙기

김길태 기자   |   등록일 : 2018-06-15 10: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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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은마아파트/자료=urban114]

무엇보다 1970년대부터는 소위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중산층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단지설계 개념이 도입된다. 특히 정부의 정책과 민간건설사의 이익, 중산층 주택수요자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아파트를 주거생활의 근대화로 여기며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단위 단지 아파트가 건설된다.

대단지 아파트

본격적인 단지설계 개념이 도입된 아파트로는 동부이촌동 한강멘션 아파트 단지(3260세대), 반포 주공아파트(3650세대), 압구정 현대아파트(중산층 대상), 잠실 주공아파트(1만9180세대) 등이다.

특히 ‘동부이촌동 한강멘션’ 아파트는 사전 분양제를 최초로 도입한 단지다. 모델하우스를 처음 선보였으면 프리미엄을 강조한 첫 아파트다. 특히 50평대를 공급했는데 이후 큰 저택은 ‘멘션’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강멘션은 국내 최초 완전입식구조로 채택돼 고급 자재가 사용된 아파트다. 

‘반포 주공아파트’는 1973년 대한주택공사(현 LH)가 건설한 대한민국 최초의 주공아파트 단지다. 22평~62평 3786가구로 지은 대단지로 주공아파트가 대한민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국내 최초 복층 설계를 도입했는데, 1·3·5층만 현관을 설치했고, 나머지 2·4·6층은 실내에 설치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구조됐다. 반포 주공아파트는 1단지에 이어 2단지와 3단지까지 지어 분양했 2단지와 3단지는 현재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국내 최초의 주공아파트라는 점을 들어 반포 주공아파트 1개동을 마을 박물관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976년 현대산업개발에서 건설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권 개발이 급속화 되고, 인구가 집중되면서 지어졌다. ‘강남’ 이라는 단어가 부의 상징이 되는데 한 몫 했다. 강남구가 1975년 탄생했고, 이후부터 반포, 압구정, 청담,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첫 건설 당시 특혜분양 사건이 일었는데, ‘5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공개 분양해야 한다’는 주택건설촉진법을 무시하고 건설한 아파트의 상당수를 정부 관리,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고위급 인사들에게 주변 집값의 50% 수준으로 특혜 분양해 정부의 철퇴를 맞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권 일대 고소득층 주거지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고소득층 아파트의 상징이 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은마아파트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자료=urban114]

이후 아파트 대량건설 공급시대가 열린다. 아파트 과잉공급으로 인한 평면의 획일화 속에 부분적인 변화를 시도한 시기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정부 주도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민간 기업이 아파트를 짓게 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됐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으로 주거복지 정책이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전후로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선수들을 위한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기자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아파트’다. 기자선수촌아파트는 올림픽프라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바깥으로 높아지는 유래 없는 구성으로 지어졌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우리나라 아파트 최초로 지하주차장을 설치했고, 넓은 동간 간격(낮은 용적률)등으로 유명세를 펼쳤다. 두 아파트 모두 한국 아파트 건축사에서 중요한 건물로 다뤄진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차게 되는데, ‘성냥갑 아파트’라고 불리는 등 부정적인 시선도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아파트의 차별화가 시작되는 시기다. 무엇보다 1997년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같은 크기의 아파트라도 위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1990년 이후 주택의 대량공급을 위해 용적률의 상한을 400%까지 허용한 아파트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됐다. 현재의 용적률 체계를 수립된 것은 2000년 이후다. 즉 1990년 이후 준공한 아파트들은 고밀도 아파트가 대부분이며 이 시기에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또 내진설계가 도입돼 1990년 이후 준공한 아파트들은 이전 아파트들과 달리 구조적으로 상당한 안전성을 확보하게 됐다.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이와 함께 프리미엄도 강해졌다. 강남권도 여전히 부각됨에 따라 분양 경쟁도 치열해졌다. 심지어 미분양 아파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건설사들은 경쟁에 기인해 내부 설계화 마감재 고급화에 치중했고, 초고층 주상복합 형태의 아파트도 등장했다. 도로를 따라 아파트가 배치돼 조망권을 확보하는 시도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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