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HOME > NEWS > 주간특집

대한민국 공동주택의 역사②

‘제 2세대’ 공동주택의 확산기

김길태 기자   |   등록일 : 2018-06-15 10:51:58

좋아요버튼2 싫어요버튼0

이 기사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목록으로 돌아가기

1960년대 중 후반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 추진됐다. 무작정 상경하는 농촌 인구의 급속한 대도시로의 유입으로 서울 인구가 매년 20만 명씩 급증했다. 이로 인해 서울 시내 산 중턱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난립했다. 이에 자본축적의 효율성을 위해 노동자를 위한 주거시설 공급이 절실했다.

당시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욱 서울시장은 시민아파트 2000동과 9만 가구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1960년대 후반 1년 간 무려 32개 지구에서 1만5840가구가 건설돼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벌떡벌떡’ 들어선다”하여 ‘벌떡 아파트’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서민아파트 건설을 목표로 만든 시민아파트/자료=urban114]

주상복합의 등장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데, 바로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종로구 종로3가 175-4번지에 있는 세운상가는 당시 재력가나 정부 고위인사 등이 거주했다. 특히 세운상가는 1970부터 1980년대 당시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리기도 했다. 삼보컴퓨터가 설립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세운상가는 강남 개발과 용산전자상가의 등장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입지가 좁아졌다. 현재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공원화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68년 완공된 낙원상가는 80, 90년대에 아마추어 악기사들이 낙원가에 모여들어 세계 최대의 악기 전문 상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낙원상가는 아파트와 상가가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며 건물 아래에 도로가 있는 형식으로 지어졌다. 한때 철거가 시행될 듯 보였으나, 낙원상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확정되면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미군과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서 외국인들을 위한 아파트가 지어졌다. 용산구 한남동 ‘힐탑아파트’는 외국 기술자들이 경제발전에 필요한 존재라고 여긴 정부와 기업이 지은 외국인 전용 공동주택이다. 국내 아파트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등장했으며,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자동식 전화가 설치됐다. 지상 11층짜리 힐탑아파트는 우리나라 첫 고층아파트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있다. 

특히 힐탑 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필로티 구조(건물 전체나 일부를 기둥으로 들어올려 건물을 지상에서 분리시키는 것)를 과감하게 도입하기도 했다. 건물 외벽은 단열효과를 고려해 콘크리트로 마감했으며 내부는 당시 62~108㎡(19~33평)으로 구성됐다. 

‘대한민국아파트발굴사’에 따르면 힐탑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 안병의 씨는 “남측으로 난 발코니는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중략) 햇볕을 쬐고 식사를 한다. 옆집과 나의 집 사이의 벽의 오프닝을 통해 이웃과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이루어진다. 화분을 놓거나 음식을 건네주고 받을 수도 있고 직접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현재 힐탑아파트는 한국인도 거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 임대 수요가 많은 편이다. 2013년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선정돼 있다.

또 정부는 ‘남산외인아파트’를 지어 힐탑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을 대거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92.5~115.7m2(28~35평), 16, 17층 규모 2개동으로 나눈 남산외인아파트는 남산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1994년 철거됐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폭파 철거공법이 도입돼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낡은 판자촌을 밀고 사람들을 수용할 아파트를 구상한 ‘시민아파트’가 세워졌지만, 6개월이라는 공사기간으로 부실공사가 이어지면서 붕괴됐다. 시민아파트 붕괴로 74명의 주민들 중 30명 사망, 4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불도저 시장’ 김현옥 시장이 사임하고 시민아파트 사업은 중단되었으며, 아파트를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이후 시범아파트가 등장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790세대와 24개동의 규모로 지어졌는데, 국내 첫 민간인 고층아파트이자 대단지로 기록됐다. 건설은 삼부토건, 현대, 부국, 대림, 한국건업, 건설산업, 모양건설이 건축을 맡았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기둥식 아파트로 알려지면서 역사적 가치로 인해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서소문아파트/자료=urban114]

1971년에 건축된 서소문아파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선형식 아파트이다. 서소문아파트 구조는 7층 높이에 126가구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이 상가로 구성됐고 2~7층까지는 주거목적으로 지어졌다. 서소문아파트도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좋아요버튼2 싫어요버튼0

이 기사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목록으로 돌아가기

도시미래종합기술공사 배너광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