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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건설사 재조명④

한국경제 성장동력 건설업 “현재 호황 안주해선 안 돼”

김길태 기자   |   등록일 : 2018-05-11 13: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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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대한민국은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경재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의 성공적인 토대는 국내 건설사의 역할이 컸다. 비록 최근 건설 경기 불황 등으로 예전과 달리 빛을 보진 못하고 있지만 국내 건설사들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눈부셨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기여했던 건설사들 중 한 순간의 실수와 실적부진 등으로 해체된 건설사들도 있다.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시평순위)가 도입된 후 30대 건설업체 중 70%에 해당하는 업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반세기 동안 10대 건설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1962년부터 ‘연도별 시평순위’에서 지금껏 30위권 내 상위랭킹에 올라 있는 업체는 현대건설, 대림산업, 경남기업 등이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2개사만이 50년 동안 10대 건설사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급격한 경제성장에 건설업 부흥의 시기도 있었지만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업체가 늘면서 건설업계가 부침을 겪었다”면서 “향후에도 시평 순위 변화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대형 상위 건설사들의 매년 화두는 예측불허의 위기 시장에서 생존을 목표로 잡는다. 건설경기가 예측불허인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실경영’과 ‘수익성 강화’에 역점을 둔다. 이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건설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한 대내외 건설사업 환경이 국내 건설업 성장에 변수가 될 수 있다면서 해외 역량 강화에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의 국내 주택시장 호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6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국내 주택시장은 저금리 등 정부정책에 의해 팽창된 것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해외 수주전략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건설업계에 찬바람이 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 건설 산업의 침체는 꽤 오래 지속됐고, 특히 공종별로 볼 때 건축부문의 투자는 2008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로 극심한 침체가 이어지기도 했다. 공공부문에 의해 주도되는 토목공사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편성 등의 영향으로 감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건설경기 침체는 건설업체들의 경영을 심하게 압박했으며, 100대 건설사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10년 간 약 4000여개의 중소 건설업체가 사라져 건설업 생태계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결국 부동산경기 침체는 건설업체들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금융권의 부실까지도 키워 한국경제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의 몰락

한편 경제위기와 건설경기 악화, 실적부진 등으로 사라진 건설기업들 외에 국내 굴지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들의 몰락도 존재한다. 1990년대 삼성, 현대, LG와 버금갈 정도로 1998년엔 현대에 이어 재계 서열 2위에까지 올랐던 굴지의 대기업 대우그룹이 있다. 

대우그룹은 지난 1967년 김우중 전 회장이 서울 중구 충무로에 창업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시작됐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발한 대우그룹은, 1970년대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급속히 발전했고,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다. 특히 당시 정부가 주도하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발판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1970년대 고속 성장을 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아 온 대우그룹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며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다져나갔다. 1982년 모기업 (주)대우를 출범시킨 것. 또한 자동차, 가전사업 진출을 잇따라 성사시켜 현대, 삼성, 럭키금성(현 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대우그룹의 행보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대우그룹은 공격적인 경영으로 IMF외환위기를 못 버텼고, 차입경영을 통해 성장해오던 그룹의 경영여건이 악화됐다. 특히 쌍용자동차 인수가 치명적 악수가 작용돼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국제그룹도 존재했다. 대한민국 재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기업이다. 신발 제조업으로 명성을 떨쳤던 기업집단으로, 잘나가던 시절 재계 7위, 계열사 21개 규모를 자랑하던 초거대 기업이었다.

대한민국 신발 브랜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왕자표 고무신’, ‘프로스펙스’ 브랜드가 이 국제그룹의 작품이다. 이 같은 국제그룹의 흔적은 현재로선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인데, 한때 대한민국 재계를 호령했던 거대 기업이 힘 한번 못 써보고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전무후무했던 일이다.

국제그룹이 해체된 시기는 지난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이었다. 당시 주력 계열사였던 국제종합건설, 동서증권은 극동건설그룹에, 나머지 계열사와 국제그룹 사옥은 각각 한일그룹에 넘어가며 국제그룹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STX그룹도 대한민국 재계에서 보여주던 위상이 남달랐다. STX그룹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샐러리맨 신화’의 증거였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그룹 총수까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그룹의 창업주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다. 

국내 재계 상위권에 있는 대기업 집단 절대 다수가 재벌 2·3세들이 경영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일개 샐러리맨 출신의 창업주가 일궈낸 성공 신화는 회사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그렇기에 STX그룹의 몰락이 가져다준 충격은 다른 기업의 몰락보다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 

STX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출범해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기업이다. 그러나 공격적 투자 방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이 해체의 이유로 꼽힌다. 회사의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주요 수단이었던 인수합병의 부작용 여파가 불거진 것이다.

이처럼 한때 대한민국 경제계를 호령하던 대기업이 순식간에 해체되는 일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대기업의 해체는 그 커다란 족적만큼이나, 심각한 상처를 남기기 마련인데, 대량의 실직자 발생과, 국가 경제 손실 등 그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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