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계열사 수 41개, 연간매출 62조원, 자산 83조원, 자본금 18조원, 해외법인 수 396개. 지난 1998년 해체 전 대우그룹의 경제적 위상을 드러내던 지표다. 대우그룹은 창립 직후부터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한때 재계 2위에 오르는 등 큰 족적을 남겼다.
대우그룹은 지난 1967년 김우중 전 회장이 서울 중구 충무로에 창업한 대우실업을 모태로 시작됐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발한 대우그룹은 1970년대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급속히 발전했고,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다. 특히 당시 정부가 주도하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발판으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1970년대 고속 성장을 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아 온 대우그룹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며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다져나갔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인해 그룹 해체라는 비극을 맞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그룹의 몰락 이후 워크아웃·매각 등 갖은 풍파와 역경에 시달려왔던 대우건설은 그야말로 ‘바람잘 날 없는 기업’이란 평가가 공공연하게 돈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3위에 오를 정도로 그 입지와 영향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건설업계는 대우건설의 저력을 두고 과거 재계를 호령한 김우중 전 회장의 막강한 추진력과 특유의 도전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지만 대우건설이 고속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 근간에는 김 전 회장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한 대우그룹의 초석을 마련한 기업이 바로 대우건설이라는 게 업계의 평판이다. 대우건설은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편입됐다가 2008년 외환위기로 금호그룹이 재정위기에 빠지면서 채권단의 품으로 들어갔다.
굴곡 있는 역사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과 저력을 과시해 동종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우건설은 줄곧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는데, 전문경영인으로 과거 대우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시킬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기도 했다. “김우중 회장이 없는 대우건설은 과거 건설명가의 화려함이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창업 초기부터 일찍이 해외에 눈을 돌렸고 남아메리카의 에콰도르, 아프리카의 수단과 알제리, 리비아 트리폴리, 이란아와즈, 미국 시애틀, 파키스탄 등으로 진출했으며 한국 내에서도 울산화력발전소 4·5·6호기, 지하철2호선, 목동열병합발전소, 월성원자력발전소, 경부고속철도 등을 잇달아 수주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업체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대우건설은 1970년대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붐을 이끌었던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대우건설이 중동에 진출한 것은 197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신생 건설사였던 대우건설은 경쟁이 치열한 중동을 피해 낯선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를 개척했다.
리비아는 사막이 대부분이지만 국토 면적(176만㎢)은 한반도의 8배에 이를 정도로 크고 북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산유국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어 발전 가능성도 풍부한 지역이었다. 초기엔 토목공사 위주였지만 지금은 발전소·호텔 등 고부가가치 공사를 주로 수주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이 리비아에서 처음 수주한 공사는 1억달러 규모의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신축 공사(1978년)다. 이듬해 리비아 사막 한복판에 있는 우조비행장 공사를 수주했다. 이탈리아 업체가 공사하다 포기하고 떠나버린 난공사였다. 한낮 온도가 40~5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야영생활을 하면서 700㎞ 길이의 공사용 도로를 깔고, 우물까지 파서 공사를 끝냈다.
대우건설은 리비아에서 발주되는 토목·건축물·플랜트 등 웬만한 공사를 모두 ‘싹쓸이’로 수주했고 지금까지 리비아에서 수주한 공사 금액만 12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리비아에선 “대한민국은 몰라도 대우건설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우건설의 입지는 대단하다는 평가다.
비록 현재 리비아 내전 발발로 리비아 현장에서 철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대우건설은 올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철수한 지 약 3년 5개월 만이다.
특히 공사실적, 재무상태, 기술력, 대외 신뢰도 등을 평가하는 대한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에서 2006년부터 2008까지 한국 내 1위의 건설업체로 꼽히는 등 활발한 사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주택사업분야도 특별하다. 대우건설은 차별화된 역량을 바탕으로 수년간 국내 주택공급실적 1위를 달성하며 업계 리더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는 고품격 주거문화공간 제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