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효율성’을 중심으로 각종 시설이나 구조물, 공간 환경 등이 설계되었으며 안전에 대한 요소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돼 각종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됨에 따라 안전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가지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난은 자연재해를 비롯해 인적 재난까지 그 사고의 범위가 다양하고 규모도 커졌다. 특히, 거대해져 가는 도시환경에서의 재난은 건축을 중심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도시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건축물들이 복잡해지고 구조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안전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재난과 안전, 소방 등에 대해 많은 디자인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해지고 대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법 조항의 구속, 편성 예산의 부족, 기본 가이드의 부재 등으로 세계적인 추세에 많이 미흡한 실정이다.
우리는 디자인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매일 지속되는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 그리고 사용하는 모든 물품은 디자인이 돼 있고, 이런 디자인이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디자인 문제는 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 실생활에서 시민들(사용자)은 자유롭게 입맛에 맞는 공간 또는 제품 디자인을 선택해 사용하고 소비할 수 있지만 공공디자인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공적인 영역의 디자인, 공공디자인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으며 이들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선택된 디자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공디자인에서 안전이 고려되지 않은 경우 디자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요소로 인해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미나토미라이21 전경/자료=요코하마 시 홈페이지(www.city.yokohama.lg.jp/)]
그렇기 때문에 공공디자인과 안전디자인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공공디자인은 도시의 이미지와 브랜드로 연결되면서 도시의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최근 세계화가 촉진되면서 도시의 안전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안전한 국가, 안전한 도시의 이미지는 도시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안전을 중시한 공공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사례로 일본 요코하마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디자인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고층빌딩이 밀집한 미나토미라이21은 조선소 등 산업시설이 밀집한 해안가 매립지였던 요코하마를 독립적으로 발전시키고 수도권 기능을 분담하기 위해 조성된 계획 도시다.
1960년대 도쿄 인구가 대량 유입되면서 도쿄의 부속도시·베드타운이라는 이미지로 전락한 요코하마는 차별화된 정체성 확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3가지 원칙의 도시개발 전략을 내세운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4시간 활동하는 국제문화 교류의 중심지, 21세기의 정보도시, 역사·녹지·수변으로 둘러싸인 인본주의적 환경의 창조다. 용적률을 완화해 건물을 높게 짓게 해주는 대신 건축물 디자인과 녹지 조성 등 공공개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을 반드시 마련하도록 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차량으로부터 안전한 보행자 공간과 넓게 개방된 해안을 녹지축에 연계해 자연의 매력을 역사적 기념물과 결합시킨 것이다. 특히,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요코하마 시는 안전한 보행자 공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강조해 신도시 개발에 안전을 중시한 공공디자인을 적용하고자 했다.
[산업단지 안전디자인 가이드라인/자료=울산시]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공공디자인은 안전할까? 현재 공공디자인 사업을 담당하는 행정부처는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이 있고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자체들이 앞다퉈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아직 통일된 공공디자인에 관한 법률이 없어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울산시에서는 산업단지 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산업단지 안전디자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지역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년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연계협력사업 공모에 ‘산업단지 안전사고 0 생활권 조성사업’이 최종 선정됨에 따라 국비 30억 원도 확보했다. 이 사업은 울산시와 경주시·양산시·밀양시 등 위험물 취급기업이 밀집돼 있는 울산 중추도시생활권 내 4개 도시가 참여하며, 총 40억 5천만 원을 투입해 오는 2019년까지 3년간 작업자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발생하는 산업단지의 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업단지 안전디자인은 작업장에서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사용자 중심의 인적·물적·관리적 요인을 중심으로 산업시설과 작업환경 둥 근로자와 관련된 총체적 안전+디자인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2015년 8월까지 울산 국가산업단지 내에서 발생한 사고는 455건, 사망자는 32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울산 국가산업단지 1,191개 입주기업 가운데 위험물 보유업체는 323개사, 위험물 제조소 등 허가 현황은 5,017개소, 대량 위험물 제조소는 1,109개가 있어 항상 주의와 안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이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위험요소에 노출된 산업단지 내 공간, 시설물·사인물 등을 안전을 고려해 리디자인(re-design) 하게 된다. 근로자의 인지 오류를 최소화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사업의 목표다. 세부적인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작업장 배경이 되는 바닥과 벽 등은 눈에 잘 띄는 색상으로 바꿔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위험 시설물에는 색상을 달리한 안전펜스 설치, 위험 지역별 안전표지판 개발 등을 진행한다. 울산시 관계자는 “산업단지의 안전디자인에 대한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부주의한 행동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인명사고를 줄임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혁신도시에 이전한 안전 관련 유관기관과 협업으로 사업의 효율성과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