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신호기는 교차로 또는 횡단보도의 교통류가 상충되는 장소에서 시간을 교차해 교통 진행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교통질서 유지 기능을 지닌 상호약속 수단의 시설이다. 하지만 그 기술적 발달은 급증하는 자동차 보유 증가율을 쫓아가기에 역부족인 실정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로 성장과 소통 위주의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이에 비해 교통안전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각종 안전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그 심각성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교통사고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스몸비의 안전을 위한 ‘+ 라이트 라인(Light line)’
스몸비(Smombie)란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걷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보행자 1,3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행 중에는 전체의 33%가, 횡단보도 횡단 시에는 26%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이용 중 발생한 보행자와 차량 간 사고는 2011년 624건에서 2015년 1,36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스몸비족에 의한 보행자 사고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경찰은 보행자 사고의 상당 부분이 스몸비족과 직·간접적인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행 중 평소 120도 각도의 시야각이 스마트폰 사용 때 10~20도로 줄어들며, 소리에 대한 반응도 역시 50%로 급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최근 스몸비들의 사고가 급증하면서 세계 각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대책을 세우고 있다.
네덜란드 지방 당국인 보데그라벤(Bodegraven)에서는 이런 스몸비들의 사고를 줄이기 위해 교통 시스템 전문기업 HIG(HIG Traffic Systems)의 도움을 얻어 새로운 교통안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이 새로 도입한 교통안전 시스템은 ‘+라이트 라인(Light line)’이라는 LED 신호등이다. 라이트 라인은 일반 신호등처럼 기둥이나 도로 위가 아닌 도로 바닥에 얇은 LED 선을 삽입해 신호를 알려준다. 신호등을 바닥에 설치한 이유는 바로 스마트폰 사용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시선은 항상 정면이 아닌 바닥을 향하고 있고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교통사고는 대부분 기존 신호등의 불빛을 잘 확인하지 않아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라이트 라인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시선을 고려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탄생한 결과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과 함께 변화하는 행동 패턴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춤추는 신호등/자료=urban114]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는 조급함과 지루함 때문이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신호대기를 한다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지루한 시간을 유쾌하게 바꿔 사람들이 기다리는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시민들이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시도했다. 신호등 옆에 부스를 설치하고 그 부스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게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었고, 춤추는 모습이 신호등의 빨간불에 그대로 보이게 했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이 캠페인으로 인해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 81%가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안전하게 파란불을 기다리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많은 도시에서 실제로 지역의 대표적 이미지 적용을 시도하기도 하며, 신호등에서 로컬 브랜드로 전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독일의 신호등 맨, 암펠만(Ampelmann)
독일 베를린의 신호등에는 베를린을 상징하는 ‘암펠만(Ampelmann)’이 있다. 암펠만은 암펠(Ampel, 신호등)과 만(Mann, 아저씨)이 합쳐진 이름으로 1961년 옛 동독의 교통인지 심리학자 칼 페글라우(Karl Peglau)가 사람들이 좀 더 신호를 잘 지키게 하기 위해 고안한 신호등 속 인물이다. 암펠만은 불빛이 투과하는 면적이 다른 신호등의 두 배가량이어서 주목성이 매우 높고 그 시절 오로지 색으로만 구분하던 신호등을 형태가 있는 신호등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지만 암펠만은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 통일 이후 동독의 사회 시스템이 서독식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신호체계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4년 독일 정부는 암펠만을 평범한 형태의 서독 신호등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암펠만이 철거되면서 반향은 매우 컸다. 시민들 사이에 ‘암펠만 살리기 모임’이 생겨나고 “일상 속 마지막 옛 동독의 상징인 암펠만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암펠만 살리기 캠페인을 주도했던 서독의 디자이너 마르쿠스 핵하우젠은 1996년 폐기된 암펠만 신호등을 수거해 조명으로 만들면서 암펠만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동독에 대한 향수와 분단의 상징성을 더해 베를린은 일부 낙후된 신호등을 암펠만으로 교체하기 시작했고, 암펠만은 동독 사람들의 위안이자 베를린을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이후 2007년 베를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암펠만은 마스코트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독일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많은 상품들이 출시돼 세계 각국에 판매되고 있다.
[옛 동독의 신호등이자 로컬 브랜드가 된 암펠만/자료=http://www.ampelmann.de/)]
독일의 암펠만은 이미 캐릭터화 되어 전 세계 유명 백화점과 상가에 입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보행자 신호등이 생활밀착형 캐릭터 상품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암펠만은 이제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독일 정치교육을 위한 센터에서는 암펠만을 ‘독일 통일상’의 로고로 사용하고 있고, TV 퀴즈쇼 프로그램의 캐릭터로도 쓰이고 있다. 독일 외무장관이 외국 손님에게 주는 공식 선물도 암펠만이다. 이 캐릭터로만 거둔 부가가치는 엄청난 수준이다. 암펠만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탄생한 머리를 묶은 여자 모양의 ‘암펠프라우(Ampelfrau, 신호등 여인)’는 교통 신호에도 여자 캐릭터를 넣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냈다. 교통 교육 캠페인을 위한 ‘암펠만재단’ 설립과 ‘암펠만 유람선’ 운행도 계획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탄생한 신호등의 캐릭터 암펠만은 이제 옛 동독 사람들의 문화적 공황까지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