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성북구 장수마을. 서울 성곽이 있는 동네들 가운데 하나로 가파른 구릉지와 문화재인 삼군부총부당이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가스조차 들어가지 않는 오지나 다름없던 마을이었다. 마을 토지의 64%가 국공유지인 데다 무허가 주택이 많아 재개발은 진척이 없었고 노후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대안적 재개발 모델이 필요했다. 장수마을은 서울의 여느 노후 주택지처럼 지난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인 삼선4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장수마을은 폐허로 남겨진 빈집들이 늘면서 범죄 위험에까지 노출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무렵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모임의 활동가가 장수마을에 유입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장수마을은 주민과 마을활동가가 스스로 재개발에서 탈피해 대안을 모색하고 마을가꾸기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으며, 현재 이 마을은 주민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마을로 천천히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장수마을 주택개량사업/자료=지역발전포털(http://www.redis.go.kr/)]
장수마을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동네목수’의 역할이 컸다. 2011년 동네목수라는 마을기업을 설립, 마을 주민들을 우선 고용해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마을의 물리적 변화를 이끌었다. 행정안전부 마을기업 공모사업에 당선됐고 성북구청과 마을기업 지원 협약을 체결, 그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수리 사업을 시작했다. 마을 윗자락에 있는 한성경로당 지하에 목공작업장을 개소하고 2012년 5월에는 빈집을 직접 리모델링해 작은카페를 열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는 낡고 위험한 주택을 개량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마을학교인 집수리 교실이다. 집수리 교실을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집을 스스로 고치고 관리하도록 역량을 키우고 건설 일용직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모아서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마을기업을 창업해 직접 집을 고쳐보자는 복안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주거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졌다. 동네목수는 주민과 시청·구청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며, 2013년에는 주거환경관리사업지역으로 지정받아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도시가스 유입과 하수관 정비, 범죄예방을 위한 골목길 정비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동네목수’의 빈집 고치기 프로젝트
2011년 서울시 마을기업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았고 지난해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 기업으로도 선정된 동네목수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빈집 프로젝트’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낙후된 집을 먼저 동네목수가 비용 부담을 해서 고친 뒤 세입자를 구하면 그 전세보증금으로 집주인이 공사비를 지불하도록 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이렇게 10여 채를 고쳐오면서 ‘순환임대주택’이라는 새로운 모델도 생겨났다. 동네목수는 본격적인 주택개량사업에 대비해 집수리 기간에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순환임대주택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순환임대주택은 집수리를 이유로 세입자가 쫓겨나는 걸 방지하고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집수리를 주저하는 가옥주의 주택개량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으로 구상됐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2013년 하반기부터는 주택개량의 수요와 함께 세입자들의 비자발적인 주거 이동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순환임대주택은 최근 3호까지 생겨났고 덕분에 안심하고 집수리를 맡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됐다.
[장수마을 작은카페와 순환임대주택/자료=지역발전포털(http://www.redis.go.kr/)]
이 과정에서 동네목수가 한 중요한 역할은 주택 보수비용 일부를 공공이 부담하도록 설득해낸 일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도로와 공동 구역 정비까지는 지원해도 주택 자체 수리는 철저히 개인 몫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동네목수가 내세운 가치는 바로 ‘경관’이다. 서울 성곽길이라는 역사 유적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거 모습이 남아 있는 생활 경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설득을 위해서는 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것보다 지금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했다.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는 “유사 사례를 찾아 설득하기도 했지만 시대적 흐름 영향인지 자연히 공감대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지난 이삼 년 전과 비교하면 재생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장수마을은 조용해진 상황이다. 주민들 스스로 해나갈 수 있을 때 할 수 있도록 수위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변화는 더디게 진행 중이지만 주민들이 합심해 이끌어낸 성과가 마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마을기업인 동네목수는 집수리뿐 아니라 맞춤가구 제작, 중고가구 수리 등 건축 및 목공 일에서부터 취약계층을 위한 집수리 지원, 주거복지 상담 등 주거문화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주식회사다. 동네목수는 ‘마을’과 ‘기업’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설립 당시인 2011년에는 개인사업자로 시작했지만 2012년에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아직 수익을 창출하고 자본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비단 장수마을만이 아니라 집수리나 인테리어 공사가 필요한 곳에서 주문이 계속되고 있다. 2011년 화재의 아픔을 딛고 복구된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판자촌 마을회관 지붕공사도 담당했다. 목공·건축 등의 생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던 주민들과 함께 주거환경 개선과 주민 일자리, 소득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다른 기업과 달리 주민들이 집수리 대상이 되거나 피고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주가 될 수 있도록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생활임금, 노동권을 보장하는 평등 공동체다.
비단 기업으로서만이 아니라 동네목수는 초기 설립 정신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을’과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다. 목공교실, 재무교실 등의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상하반기 주민회의와 마을잔치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상적으로 골목별 모임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도 하며 구체적인 욕구를 나누고 있다. “마을의 모든 것이 동네목수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동네목수가 소식통으로, 중재자로, 조력자로 뛰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마을에 대한 정보나 다양한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입자 모임을 통해 임대차계약, 집수리 부담 등 일반적인 세입자의 문제도 나누고 특히 장수마을과 같은 달동네나 판자촌에서 겪게 되는 집주인이나 관과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 방치 및 분리수거 문제, 골목길 계단 리모델링, 평상과 쉼터 조성이나 이웃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함께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