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이다.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논의된 지 10년 만에 지난해 8월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초기 공공디자인이 작품성과 단발적인 이슈만을 추구해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최근에는 공공성과 삶과의 관계성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과 괴물 조형물/자료=강남구, 한강사업본부]
실제로 공공장소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만든 결과물이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여의도 한강공원의 ‘괴물’ 조형물과 강남 코엑스 앞의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이 있다. 지난 2015년 1월 한강변에 설치된 괴물 조형물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 캐릭터를 1억 8천만 원을 투입해 길이 10m에 높이 3m, 무게 5톤의 동상으로 구현해냈다. 지난해 4월에는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에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말춤’ 안무를 본뜬 거대한 청동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8.3m, 높이 5.3m의 이 동상을 만드는 데 4억 1,832만 원의 예산이 배정됐으며 이 중 제작·설치 비용으로 3억 7,780만 원이 사용됐다.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설치된 이 조형물들은 도시의 경관과 조화롭지 않고 막대한 예산에 비해 단순히 보여주기 식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조형물들은 작품 전시에만 치중해 공공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공공성’과 삶과의 ‘관계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연희동 주민센터/자료=서울디자인재단]
반면 지역에 대한 이해와 공공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공공디자인 사례도 많다. 그 중 지난 3월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서울의 한 주민센터가 본상(Winner)을 수상했다. 2015년 서울디자인재단이 디자인한 ‘연희동 주민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주민센터를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주민센터의 디자인 콘셉트는 바로 오픈 키친(open kitchen)이다. 집 안에서 소통의 장소로 쓰이는 주방의 역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단순히 예쁘게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곳곳을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민들이 실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 도출부터 디자인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했는데, 사업 종료 후 주민 만족도 조사 결과 92.4%의 만족도를 나타낼 만큼 성과를 거뒀다.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옥상 DRP/자료=DRP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ongdaemunyouth/)]
청계천 근처에 있는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B동 옥상에는 동대문 옥상낙원(DRP, Dongdaemun Rooftop Paradise)이라는 프로젝트 팀이 둥지를 틀고 있다. 동대문 옥상낙원은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서울시 청년허브 사업의 일환으로 동대문의 ‘자원’을 조사하기 위해 모인 청년들은 주변에 널린 기존 자원에서 새로운 가치·문화를 모색했다. 이를 통해 25톤의 쓰레기가 방치돼 있던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옥상은 새로운 문화 공유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청년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6개월 동안 쓰레기를 치우며 버려진 옥상을 새로운 문화 공유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켰다.
쓰레기에서 발견한 유물 전시, 텃밭을 가꾸기 등과 같은 다양한 행사나 외부 작가 기획과 주민 참여 워크숍 등을 개최해 공유 공간으로 꾸준히 활용하고 있다. 공공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참여와 소통의 요소들을 모두 갖춘 것이다. 지난해에는 버려진 공간을 문화적 생산지로 전환 및 확대하고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2016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동대문 옥상낙원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방치된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옥상을 주민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공공디자인 전문가인 미국 에단 켄트는 “공간을 통한 사회혁신의 선구적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조제보건진료소/자료=대한건축사협회]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인 경북 영주시는 국내 유수의 건축상을 휩쓸고 있다. 주인공은 20여 개의 공공건축물로 보건진료소·읍사무소 등 시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공공공간이 대다수다.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토해양부장관상, 대한민국 신인 건축사 대상 등 작은 공공건축물이 받은 수상 성적은 화려하다. 하지만 공사 비용은 기존 공공건축물과 비슷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지난 2007년부터 국토연구원의 부설 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제안을 받아 만든 ‘공공건축⋅공공공간 통합 마스터플랜’이 있다. 심지어 서울보다 먼저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에 있는 보건진료소, 풍기읍 성내리의 풍기읍사무소, 그리고 가흥동의 한절마경로당은 영주시 통합 마스터플랜의 초기 성과로 알려져 있는 공공건축물들이다.
전문가들은 공공디자인이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했다고 해서 공사비를 많이 들였다고 해서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그것이 어떤 한 개인이 소유하는 건물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공건축물이라면 건축물이 들어서게 될 땅의 맥락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기존 도시구조와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잠재적 이용객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며,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돼야 한다. 이러한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는 영주시의 통합 마스터플랜은 다른 소도시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