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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공간에서 빈민의 행위를 제한하는 홈리스의 도시 ③

홈리스에 대처하는 선진국 사례와 시사점

이인해 기자   |   등록일 : 2017-07-12 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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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 퍼스트’ 홈리스들에게 집을 준 핀란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도심에 있는 콘피난사스 금융센터는 주요 투자자 다비드 브릴렘버그의 이름을 딴 ‘토레 데 다비드(다비드의 탑)’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대 초반 건설이 시작됐을 당시만 해도 계획은 화려했다. 1층부터 16층까지는 호텔, 18층에서 45층까지는 금융회사들이 입주할 계획이었고 옥상에는 헬리콥터 이착륙장까지 만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1993년 브릴렘버그가 죽고 1994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건물은 골조 공사만 마무리한 채 돈이 모자라 건설이 중단됐고,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한때 석유로 쌓은 부의 상징이 될 뻔했던 마천루는 실패한 자본주의의 증거로 남았다.

 

2007년쯤 도시 빈민들이 방치된 건물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이 빌딩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빈민촌이 됐다. ‘버티컬(수직형) 슬럼’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한때 이곳의 무허가 입주자들은 5,000여 명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수도와 전기를 끌어왔고 하수시설과 쓰레기장을 만들었다. 지하에는 교회가, 주차장 옆에는 농구코트가 생겼다. 발코니에는 공사 부품으로 만든 운동기구가 등장했고 계단은 주민들이 수다를 떠는 공간이 됐다. 미용실, 세탁소, 가게와 병원도 들어왔다. ‘어번 싱크탱크’라는 건축가 그룹은 이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2012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 출품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도심에 있는 코피난사스 금융센터/자료=urban114]

 

허가 없이 빈 집을 점유하는 사람들을 ‘스쿼터’라 부른다. 지난해 겨울 영국 축구스타 개리 네빌과 라이언 긱스가 짓고 있던 맨체스터의 호텔에 스쿼터 30여 명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곧바로 법원의 퇴거명령을 받아내 쫓아내지만 네빌과 긱스는 홈리스 단체와 협상을 해서 노숙인들이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줬다. 빈집이 넘쳐나는데 치솟는 집값 때문에 거리에 나앉거나 계단 밑 벽장같은 방들에 사는 이들이 많아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다.

 

북유럽의 핀란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홈리스 수가 7,000명이었다. 지난 몇년 새 1,200명 넘게 줄었다. 핀란드는 근래 유럽에서 유일하게 노숙인이 줄어든 나라다. 이 나라에서는 홈리스에게 집을 주는 계획이 몇년 동안 시행됐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에 걸쳐 이뤄진 이 정책에 참여한 시민활동가가 지난 14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를 했다. ‘하우징 퍼스트’로 불리는 이 정책의 발상은 단순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주자는 것이었다. 정부와 지자체와 민간기구가 돈을 모아 집을 사들이고, 빌리고, 새로 지었다. 단순히 지붕과 벽이 있다고 ‘집’이 되지는 않는다. 기숙사 형식의 기존 수용시설들은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아파트 형태로 바꿨다. 구세군이 운영하던 침상 250개의 수용시설은 80가구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로 2~3년에 걸쳐 리노베이션을 했다. 홈리스들에게 약물·알콜중독을 치료해라, 일자리를 구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집이 생기면 보건이나 범죄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풀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 봤다. 고민의 앞뒤를 바꿔서 필요한 것을 내준 것이다. 홈리스들을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컸다.

  

캐나다 ‘주거 우선’ 전략, 노숙자에게 조건 없이 집 제공

 

노숙자에게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은 채 주거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노숙자 해결책이 주효하고 있다. 인구 6만 3천 명의 소도시 메디신햇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메디신햇이 전개하는 ‘주거 우선’ 전략은 노숙자라면 알코올중독, 정신질환을 따지지 않고 주거를 제공한다. 보통 방 한칸의 깔끔한 아파트가 제공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주거를 제공받고 있는 이들은 120명이다. 프로그램이 본격 실시되기 전인 2014년 야간의 노숙자는 하루 63명이었는데, 2016년에는 33명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노숙자에게 일을 하라거나, 생활태도를 바꾸라거나 단체생활을 하라는 등의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곳을 제공하는 ‘주거 우선’ 전략은 1992년 미국 뉴욕주에서 캐나다 심리학자 샘 쳄베리스의 제안으로 처음 실험됐다. 노숙자는 안정적 주거가 확보된 뒤에만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대처를 시작한다는 이론에서 출발했다. 그 후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뉴올리언스·솔트레이크시티·피닉스 등에서 실시돼 효과를 봤다.

 

[해외 홈리스 보호시설/자료=urban114]

 

캐나다에서는 노숙자 문제가 심각하던 캘거리에서 2006년 처음 시작됐다. 캐나다 연방정부의 정신건강위원회는 밴쿠버 등 5개 도시에서 이 제도를 실시해 정신질환이나 중독 증세가 있는 노숙자 2,200명을 임의로 선택해 주거를 제공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거만 제공하는 비용이 노숙자들에게 긴급 의료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보다 저렴했고 근본적 효과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노숙자 한명에게 들어가는 납세자의 비용은 1년에 12만 캐나다 달러(약 1억 276만 원)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한명에 1만 8천 캐나다 달러(약 1,541만 원)만 소요됐다. 노숙자 대책 비용이 7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노숙자 동반자 전략’을 세우고, 연 1억 7,600만 캐나다 달러를 들여 61개 지자체로 이 제도를 확대했다. 메디신햇의 주거 대책 관리인 제이미 로저스는 “수감자 감소만으로도 프로그램 비용은 나온다”고 말해, 노숙자들이 주거를 제공받은 뒤 범법행위가 현저히 줄었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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