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단지/자료=urban114]
초고층 아파트의 열풍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상하이, 싱가포르, 도쿄 등 아시아와 뉴욕 등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도시로 빠르고 쉽게 다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했다. 싱가포르는 대규모 해안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은 1970년대 황량하게 버려진 항구를 매립하여 중산층 이상의 주거지로 개발하면서 초고층 아파트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등장과 1970년대에 지은 저밀도 아파트를 고층으로 재개발했다. 노후화된 주택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지만 우리나라의 재건축사업은 용적률을 높여 그 개발이익으로 수선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최근 은마아파트와 같이 1970~80년대에 지은 강남의 한강변 중층아파트는 초고층 아파트로 변신을 꿈꾸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처럼 한때 1960~70년대 프랑스와 독일·영국 등 유럽에서도 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인구가 집중되고,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를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해 고층 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안전사고에 따른 위험성 문제,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 따른 환경 문제, 행동 제약에 따른 정신질환 등 행동학적·사회병리학적 문제 등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고층·고밀의 아파트 공급 정책에서 저층·고밀 주거의 공급으로 주택 정책을 전환했다.
[영국 도크랜드(Docklands)와 덴마크 에게비에르가르트(Egebjerggard)/자료=urban114]
영국 런던의 도크랜드(Docklands)에 21세기 지속가능한 정주를 실험하는 밀레니엄 빌리지가 건설됐다. 도크랜드가 성공적인 재개발 도시로 도약할 수 있었던 건 역사적 경관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신규 개발과의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밀 주거로 개발되었으나 이곳에서 우리와 같은 획일적인 초고층 아파트 건설은 찾아볼 수 없다. 보행자 우선의 안전하고 생기 넘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고 에너지자원, 물 사용의 지속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요 에너지 소비를 50% 이상 감축하고 이산화탄소 방출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신도시 에게비에르가르트(Egebjerggard) 역시 저층 고밀, 복합개발, 거주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유럽의 다른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고층 고밀도의 주택단지에서 저층 고밀 주거단지로 전환한 것이다. 중정과 복도와 같은 커뮤니티 공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주민들 간의 소통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처럼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나라별·도시별로 살고 싶은 주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효율을 상징하던 (초)고층 아파트는 이제 유럽에서 흉물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물론 고층 고밀에서 저층 고밀 개발방식으로의 전환은 우리와 유럽의 지역 여건과 상황이 달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국의 공동주택 개발 자세, 우리가 유럽의 유명 도시를 생각하면 누구나 수백 년 된 석조주택의 멋진 경관을 떠올리듯이 도시가 저마다의 역사와 경관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초기 단계 건설에만 300년이 걸린 베네치아와 달리 20년 만에 급조된 강남처럼 도시 전체 계획적인 전략 없이 당장의 이익과 편리함에만 치우친 현재의 초고층 개발은 오히려 도시 이미지와 도시 경쟁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이 기술력이나 자본력이 없어서 초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국토의 65%가 산지이고 농지가 21%며, 도시용지 비율은 6.4%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상 도심 내 토지의 효율적 활용과 녹지 확충 수단으로서 초고층 개발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아파트 건설에서 동일한 용적률에서 층수를 두 배로 높이면 녹지율은 50%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점과 뉴욕·도쿄·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보다 훨씬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서울에서 초고층 아파트는 쾌적한 조망권을 확보해 고급 주거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주거지가 초고층 아파트로 개발되는 것이 답일까? 이웃과 주변과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윤만이 추구된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주거공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유럽 도시들처럼 주거의 미래에 대한 조금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