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일대 현황/자료=urban114]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도시재생을 통한 지역 정비 활성화를 예고한 가운데,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이 빠르게 진척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도시재생사업은 완전 철거 후 정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모습을 유지하면서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새 정부는 5년간 50조 원을 투입해 매년 100곳씩 총 500곳의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의 재생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서울시는 2015년 도시재생사업 전담조직인 도시재생본부를 출범하고 그해 12월 ‘2025 서울시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종로구 세운상가를 비롯해 성동구 성수동, 강동구 암사동, 노들섬 특화공간, 남산 예장자락, 성곽마을 재생 등이 포함됐다. 또 지난 5월 11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세운상가를 비롯해 서울시내 주요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이 대거 통과됐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이 서울시 사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가운데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계획은 오랜 세월 좌초 위기에 처해 있던 세운상가와 그 일대 상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리란 기대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은 지난 3월 ‘다시·세운 프로젝트’ 전략거점 개소식 때 박원순 시장이 발표한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 계획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그간 도시재생과 산업분야 전문가 자문, 지역주민을 위한 설명회·공청회 개최, 자치구 협의 등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이번 계획안을 마련했다.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은 「도시재생특별법」에 따라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 대해 수립하는 법정계획이다. 세운상가군 주변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시행 중인 정비사업은 기 결정된 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추진한다. 세운상가군은 종로구 세운상가에서부터 퇴계로 신성·진양상가까지 약 1㎞에 걸쳐 일직선으로 늘어선 총 7개 상가를 말한다.
세운상가의 역사와 재생사업 추진 현황
세운상가는 종로구 종로3가와 퇴계로3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8년 완공 당시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인 동시에 1층~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주거공간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폭격과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이 많았던 일본은 소개(疏開)공지 조성사업에 착수했는데, 이 사업은 당시 식민 도시였던 경성에서도 시행됐다. 경성부 내의 소개공지대는 모두 19곳으로 그 중 한 곳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의 너비 50m, 길이 1,180m의 현 세운상가 지대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방치돼 있던 소개공지에는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월남 이주민들이 모여들어 정착했고, 1960년대까지 재래시장과 술집 등의 위해업소와 판자촌이 얽혀 있는 낙후한 지역이었다.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종로와 퇴계로 일대에 대한 정비사업을 추진했고, 건축가 김수근이 종로3가와 퇴계로3가를 공중 보도로 연결하는 주상복합 건물을 설계해 1968년 완공됐다. 현대·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 등 6개 기업체가 참여, 북쪽부터 차례대로 현대상가(13층), 세운상가(8층), 청계상가(8층), 대림상가(12층), 삼풍상가(14층), 풍전호텔(현 호텔PJ, 10층), 신성상가(10층), 진양상가(17층) 건물들이 건설됐다. 세운상가 중에서는 현대상가가 1967년 7월 26일 최초로 준공됐는데, 주거시설에는 시공 때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하는 등 1971년 한강맨션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가 발전하고 1987년 저작권이 도입되기 전까지 프로그램 카피 등이 성행함으로써 세운상가는 한때 서울의 유일무이한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세운상가를 한 바퀴 돌면 미사일,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이 개발되고 서울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또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건설됨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이곳의 상가 대부분이 용산으로 이전함으로써 상가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운상가 개발사업의 역사/ 자료=urban114]
이러한 기능 쇠퇴에 대한 해결안으로 1979년을 기점으로 이 지역에 세 번의 재개발 계획을 수립했으나 실제 재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소규모 필지들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지권자의 수가 많아서 합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재개발 시도가 무산되면서 세운지구의 토지는 세분화됐고 지가는 상승했으며, 시설은 점점 더 낙후돼 갔다. 이후 2003년에 이르러 청계천 복원 사업과 맞물리면서 세운상가군을 철거해 녹지축을 조성하고 그 주변 지역을 재개발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6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세운지구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2015년까지 세운상가 철거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초고층 건물을 신축하고 종묘와 남산을 잇는 1㎞의 공원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역을 연계한 대규모 개발을 통해 남북 녹지축을 비롯한 도시기반시설을 확보하고, 한편으로는 순환 재개발 방식을 도입해 주민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때문에 초고층 건물에 대한 높이제한 문제로 중구청과 서울시와 마찰을 빚었다. 중구청과의 갈등은 서울시가 향후 이 지역에 대한 높이제한 규제를 검토하고 필요하면 완화해주겠다는 약속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였다. 이와 같은 갈등 해결의 과정을 거쳐 2009년 3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수립됐다.
하지만 세운4구역 건축물의 높이가 문화재청의 심의로 하향 조정됐고 당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개발사업의 리스크 증대로 사업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등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이에 더해 촉진지구 내부적으로 세운 녹지축 조성에 따른 주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고, 세운상가군과 주변 구역 간의 사업 여건이 달라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었다. 또한 세운상가의 건축문화적 가치와 지역의 역사적 가치의 보존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는 종로구·중구·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관계기관과 분야별 전문가 T/F팀을 구성해 논의 과정을 거쳤으며, 세운지구 재정비에 관한 심포지엄과 주민 면담을 진행해 촉진계획의 변경 필요성과 개발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갔다. 마침내 서울시는 2009년 수립한 기존 계획안을 폐기하고 2013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발표했으며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결정·고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1979년 재개발 구역 지정부터 시작된 세운상가 개발계획은 그동안 철거와 존치를 넘나들며 수차례에 걸쳐 변경됐다. 이 때문에 시 행정에 대한 주민과 상인들의 불신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세운상가 재생사업의 성공은 이른 시일 내에 신뢰 회복을 구축하는 것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서울시는 주민과 상인이 주도하는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협동사업 등을 적극 지원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