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데팡스 광장과 그랑드 아르슈 모습/자료=urban114]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세계로 향하는 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높이 110m의 신 개선문인 그랑드 아르슈(Grande Arche)는 가운데가 뚫려 있고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과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그랑드 아르슈가 위치한 라 데팡스 광장에는 자동차가 없다. 라 데팡스는 모든 자동차가 라 데팡스 광장의 지하를 통해 지나가고 지상에는 첨단 건물이 즐비하게 세워진 형태로 조성돼 보행자는 넓은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즉, 모든 교통수단과 자동차 도로들은 지하에 배치되어 있고 지상의 광장과 거리는 보행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반면 우리 도시의 모습은 어떠한가. 도로공간은 철도나 도로망으로 단절되어 있고 지하공간의 경우는 지하상가 위주로만 허용돼 왔다. 사실상 공공 목적이 아니라면 개발은 어려운 것이 우리의 실정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도로 상·하부에 민간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국내에도 프랑스 라 데팡스(La Defense) 지구 같은 첨단도시 경관이 연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입체도로, 왜 필요한가?
현재 대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도시재생사업이 확산되고 있으나 용지보상비의 과다 책정과 토지소유자의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적절한 시기에 미리 교통혼잡의 해결을 위한 도로의 확충과 기타 기반시설의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도시재생의 한 흐름인 고층·고밀개발은 입체/복합개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입체/복합개발의 다층적 특성으로부터 잠재된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인프라 구축은 미미한 상황이다.
입체도로제도란 도로의 지상과 지하공간을 활용해 복합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미래형 도심 개발의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고밀화된 도시에서 도로 정비를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토지보상비 및 생활권 단절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이용의 효율화를 추구하기 위해 도입됐다. 한정된 공간을 지하와 지상으로 넓혀 입체적으로 활용하면 도로를 확장하거나 혹은 도시 면적을 확장하지 않고도 주민들의 생활 편의성을 더 높일 수 있다.
[성남 판교 알파돔시티 개발계획/자료=국토부]
우리나라의 입체개발은 도로공간의 민간이용 제한 등 여러 규제로 인해 답보상태였다. 실제 지난 2015년 7월 준공된 성남 판교 알파돔시티의 최초 개발계획은 각 건물의 상부를 연결해 돔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행법에 부딪혀 도로 상부 구조물을 설치하지 못했다. 도로법이나 건축법 등 현행 도로와 관련한 법령에서는 도로 위쪽은 물론 지하까지도 민간이 개발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판교 알파돔시티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12월 착공한 인천 가정오거리 루원시티 개발의 경우도 도로를 지하화하고 상부공간에 공원 등을 넣어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수정돼 도로로 인해 곳곳이 단절된 형태로 추진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로공간을 민간이 이용하는 데 제한이 있어 국내 입체개발은 답보상태”라며 “도심중심지 개발이 화두인 데다 도시 건축의 창의성을 늘리고 경제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규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제가 개선되는가?
앞으로 국내에서도 일본 오사카의 게이트타워처럼 도로가 건물을 관통하는 진기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난 16일 국토교통부가 신산업 규제혁신 관계 장관회의에서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통한 미래형 도시건설 활성화 방안’을 발표, 그동안 공공 영역에서의 개발만 이뤄지던 도로 상공과 지하공간에 민간개발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도로공간의 민간개발 허용/자료=국토부]
그간 공공에만 허용됐던 도로 부지 개발이 민간에 개방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그간 도로 부지는 국·공유지로서 사실상 공공에게만 개발이 허용되고 민간의 개발은 제한돼 도로공간에는 지하상가와 같은 도시계획시설 위주로 개발이 허용되었으나 앞으로 민간이 도로공간에서 시설을 조성·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도로 자체에 대한 소유권은 공공이 유지하되 민간이 도로의 상·하부에 시설을 개발해 50년 이상 등 일정 기간 장기임대 방식으로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국토부는 도로 상공과 하부 공간에 민간이 문화·상업 시설 등 다양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도로에 관한 규제를 일괄적으로 개선한다. 교통 외에 통풍·일조권 확보 등 도로의 본래 기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발 요건을 담은 입체도로 개발구역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정 요건뿐 아니라 도로·도시·건축 부문을 통합해 지자체, 사업 주관사, 도로 관리 주체 등이 협의할 수 있는 심의 절차를 마련한다.
또 도로공간을 이용하는 주체에 대한 특혜소지를 차단하고 개발의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이익의 25% 안팎을 세금으로 걷는 ‘도로공간활용 개발이익환수금’을 신설하고, 사업 예정지와 그 주변지역에 대한 철저한 부동산시장 모니터링을 시행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입체도로는 민간시설과 중첩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공공 도로의 안전 및 유지관리가 저해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의 안전관리 의무 신설 등 안전관련 지침도 정비한다.
국토부는 입체도로제도 도입을 위해 올해 12월까지 도로법을 개정하고 내년 말까지 관련 지침을 일제 정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도로공간을 활용한 창의적 도시 디자인, 도시공간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도로 상부와 하부에는 다양한 건축물도 들어설 전망이다. 이러한 사업에는 국가뿐만 아니라 민간도 개발하는 것이 허용되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들이 보다 참신하고 다채롭게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