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공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면서 많은 폐산업시설이 용도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중국 현대예술의 중심지이자 대표적 관광지가 된 베이징 다산쯔 798, 탄광에서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독일의 졸페라인(Zollverein), 폐발전소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일컬어지는 테이트모던(Tate Modern) 미술관 등 많은 폐산업시설이 다양한 용도와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높은 천정고와 무주 대공간으로 구성된 산업시설 특유의 구조를 활용하여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의 문화시설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고, 문화시설을 넘어서서 생태나 관광을 아우르는 광의의 문화적 활용이 다층위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산업시설의 유산적 가치를 보존하고 문화적 재생으로 지역 활성화를 이룬 선진 해외 사례들을 토대로 국내에서도 재생을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시범사업’을 최초로 도입하면서 산업시설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는 산업유산의 고유성과 역사성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현대적 공간활용이 가능한 시설에 리모델링을 실시하고, 지역에 특화된 문화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콘텐츠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재생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지난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산업유산 재생에 나서고 있다. 이전 근대산업유산 재생사업과는 달리 산업유산적 가치에 제한하지 않고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였다. 산업시설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면서 문화예술 활동을 매개로 한 산업단지 자체의 재생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은 노후 산업단지, 폐산업시설 등 유휴공간을 문화예술로 재창조해 수요층의 특성과 장소성을 반영한 문화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와 지역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예술 가치 공유를 통한 산업단지 및 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단순 시설 리모델링 사업이 아닌 문화예술인과 수요자가 함께 참여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적 문화공간 및 환경을 조성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상 시설도 산업단지 내의 일상적인 공공공간과 유휴공간, 폐산업시설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조성 내용에 있어서도 산업단지 근로자의 문화 향유 및 참여, 예술 창작 체험, 문화콘텐츠 창작 등을 위한 공간의 조성과 운영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내 일상 공간에 대한 커뮤니티 아트, 공공미술, 공공 디자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전문적 운영 인력의 확보와 프로그램이 중요한 문화공간 운영의 특성을 반영해 휴먼웨어와 콘텐츠, 하드웨어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정부 지원을 받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이 이뤄지는 곳은 전국적으로 15곳으로, 2016년도에는 △대구시 대구문화체험교육공간 △경기 서울대 농생대 청년문화공간 △경기 수원시 Eco-Newseum 고색 △전북 전주시 팔복문화예술공장 △전북 완주군 Local Design △전남 담양군 문화를 빚다 ‘해동 술공장’ 등 6개의 대상지가 선정돼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정부나 지자체 중심의 사업 추진으로 인한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부재와 지역성 없는 문화시설로만 치우친 재생방향, 주민들과의 소통 구조의 결핍 등 지속가능하지 못한 운영 방안이 해결되지 못한 채 여전히 공간 재생에서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에 진행됐던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시범사업은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문화적으로 재생하려고 시도한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공간 재생과 함께 연계되어야 할 문화적 프로그램의 단편적인 구성과 주민들과의 소통의 부재의 문제가 한계로 지적됐다.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은 노후된 산업단지로의 범위 확장과 문화를 통한 산업 생산력의 고취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활용의 확장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근로자와 주변 주민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의 재생과 업사이클 아트라는 창작의 구체적인 문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운영 지원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제도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사업 추진의 독창적인 운영 방향을 수립하지 못하고 행정-전문가의 운영체계에서 주민은 문화를 제공받는 수동적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운영 지원이나 조직의 변경에 따라 사업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간 재생이 문화를 통한 지역의 재생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민 운영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지자체 운영 문화재단 위탁, 전문가 민간위탁 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민협의체 구축을 통한 주민 협동조합설립 등의 다양한 운영조직 구체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