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미즈항(清水港)
시즈오카 현(静岡県) 시미즈항은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을 배경으로 해안에는 송림이 숲을 이루고 있는 최고의 위치로, 면적 8.84㎢에 인구 3만 2,233명(2009년 기준)의 온난한 기후를 띈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만이다. 해외 40개 이상의 주요항과 연결되어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물류의 거점으로, 매년 처리하는 물동량의 증가로 규모를 더욱 확장할 계획에 있어 현재 일본 3대 수출항이며 일본 제일의 첨단 항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지역의 항만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물류·공업 기능의 확대 등 산업경제 성장을 우선순위로 운영된 항구는 선박의 대형화와 노후한 시설이 늘어서며 색채의 통일성도 없어 경관이 어지러운 항구로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91년 주민·행정·학자·기업은 ‘시미즈항·미나토 색채계획 책정위원회’의 공동협의체 구성을 시작으로 항구에 인접한 약 500㏊에 이르는 임항지구에 있는 모든 건축물, 공작물, 설비 등을 대상으로 색채계획을 시작했다.
[시미즈항 색채계획 적용 모습/자료=www.portofshimizu.com]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개성적으로 매력적인 아름다운 시미즈항’이란 색채계획의 목표로 항만에 편안함, 활력, 독창성을 부여하는 임항지구의 색채계획을 심볼색, 기본색, 악센트색, 악세서리색을 중심으로 정하였다. 심볼색은 시미즈항만을 대표하는 색으로서 임항지구 내에 건설되는 모든 시설물을 비롯하여 사인과 이벤트에 반드시 사용되는 색이다. 기본색은 임항지구 내 여러 구역에서 각 구역을 대표하는 색이며, 악센트색은 디자인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적은 부분에만 사용하는 색이고, 악세서리색은 시설을 소유한 기업의 CI를 존중하여 장식적 목적으로 가능한 최소한도로 사용하는 색을 말한다.
이를 위해 지역 특성과 장래 방향에 따라 임항지구를 8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색채계획 지침을 마련하였으며, 색채계획에서는 니혼다이라(日本平) 조망점에서 감상하는 경치를 고려했다. 색채계획의 목표로는 후지산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인공경관에 의해 아름다운 항만 만들기,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쾌적하고 활력 있는 항만공간 만들기, 색채환경으로 시미즈항 아이덴티티 표현하기 등을 개발 방향으로 추진됐다.
이로써 원색의 대형크레인(Container Crane)들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시미즈항의 심볼색인 흰색과 푸른색의 세련된 배색으로 바꾸어 칠했으며, 대형탱크는 악센트색으로 선을 넣어 압박감을 낮추고 농담을 이용한 배색 계획을 사용하여 공간에 리듬감을 살리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150m 높이의 굴뚝은 흰색을 기조로 아름답게 변신되었으며, 이후 지역의 요청으로 야간등을 설치해 항구의 상징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미즈항 색채계획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주변의 색채에 기법이나 연출을 더해 아름답고, 활기와 윤택이 넘치는 항구 만들기를 목표로 한 가이드라인일 뿐 어떠한 강제력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 가나자와(金澤)
일찍이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시아 국가 중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룬 나라로 손꼽히고 있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사회적·정서적 문화가 비슷해 도시디자인의 성공사례로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본 대륙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이시카와 현(石川縣) 가나자와 시(金澤市)는 해안에 접한 가나자와 평야와 산지가 이어지는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나자와 시는 사찰마을이지만 대영주(大領主)의 성읍으로 발전하여 성(城)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까지 일본 5대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가나자와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전통 양식의 옛 거리나 주택, 문화유산 등이 남아있는 일본의 전형적인 중세도시로 분류된다.
[히가시차야 거리와 나가마치무사 저택터/자료=http://www.kanazawa-tourism.com/]
가나자와 시는 일본 최초로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제정해 지역 특성을 살리고 도시가 가진 역사문화경관을 보호하고 있다. 가나자와 시 경관 정책의 기본 방향은 명확하다. 가나자와 시는 중심 시가지의 절반 이상을 ‘전통환경보존지역’ 및 ‘근대적 도시경관 창출지역’으로 지정해 보존한다. 특히 히가시차야(ひがし茶屋街) 거리와 나가마치무사 저택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옛 가옥이나 사원 등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나 생활 및 경제활동의 장소 중 가나자와만의 분위기를 간직한 골목은 별도로 선정해 경관을 정비하는 고마치나미(小町竝み) 사업을 시행했다.
가나자와 시는 경관 정책에 따라 명확한 색채 가이드라인과 운영 방침을 제시한다. 건축물의 지붕과 외벽에 기조색으로서 금지하는 색채기준의 경우, 먼셀표 색계를 기준으로 원색(R·Y·YR)과 형광색을 금지색으로 지정하고, Y계열에서 채도가 4를 초과하여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으며, Y와 YR계열에서는 채도가 6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원색 이외의 색채의 경우 채도 2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녹지보전구역과 접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지붕은 명도 3이하, 채도 2이하로 규제하고 있으며 외벽은 명도 3이상 6이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권장색의 경우 가나자와의 전통적인 거리 풍경으로서 땅의 색채와 나무의 색채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나자와 시 색채기준/자료=urban114]
전통건조물이나 자연소재에는 착색을 금지하고, 목조건축물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소재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옥외광고물의 경우 아름다운 경관 유지의 제정 목적에 맞추어 매주 1회 광고물 심의회를 개최하고, 심의회를 통해 개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간구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주민들의 정주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환경미화 정책이나 주민참여형 문화예술프로그램 등이 적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려는 적극적인 실천과 노력에 덧붙여 시민과 사업자 간의 이해와 설득을 위한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시민들이 공감하는 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디자인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마을만들기 사업인 마찌츠구리(まちづくり)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가나자와 시는 가나자와 시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고 이들이 직접 도시를 구상하고 시장은 임기 동안 그것을 실천하도록 한다. 임기가 4~5년밖에 안 되는 지자체장에게 도시디자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 제도 운영이나 시민 참여 등 여러 측면에서 가나자와 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창조도시로 꼽힌다. 가나자와 시는 전통환경보존조례 제정 이후 조망경관보존조례, 코마찌나미보전조례 등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안건들에 대해 창의적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운용하고 있다. 시에서는 민과 관이 협력적인 구조로 경관 정책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과의 경관학습, 경관교육 등을 통해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주민들이 사진 촬영을 통해 개선효과 여부를 측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도 함께 모색한다.
가나자와 시는 지역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문화도시로서의 장소성을 확보함에 있어 지역의 다양한 관계 주체와의 합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시민과 정부, 업종별 전문가들의 자율적인 협력을 지원하는 과정은 시 전체 경관의 조화로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민사회의 조화로움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시민들의 적극적 합의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보행자 중심의 중세마을을 보존하고 지역별 특성을 살린 상업환경을 형성하여 지역경제도 활성화시켰다. 가로시설물의 구조 및 소재나 패턴, 색채 등을 세심하게 고려한 경관 정책들이 가나자와 시만의 분위기와 장소성을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