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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 노조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 모습/자료=국토교통부]
철도파업이 사상 최대 10일째 이어지고 있다. 그로인해, ‘국민의 발’이었던 철도는 감축운행에 들어갔다. 시민의 불편이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사고가 벌어져 인명피해까지 났다. 하지만 갈수록 코레일과 철도노조 간 대립은 깊어지고 있다. 코레일은 불법 파업이라며, 파업에 들어간 직원들을 무더기로 직위해제 했다. 지난 10일, 한 대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시작된 ‘대자보 열풍’은 철도파업의 여파가 사회 각계각층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선 이번 철도파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 ‘철도민영화’ 의혹의 시작
철도노조의 강력한 의지는 ‘철도민영화 반대’라는 것이다. 철도민영화 의혹은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에서 시작됐다. 개정안에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담겨 있는데, 이는 코레일을 여객·물류·유지·보수 등 6개 자회사로 분리하는 내용이다. 즉, 코레일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철도공사를 물류·차량·시설 관련 조직의 자회사 전환 중심으로 구조 개편을 추진하되, 단순한 분리 보다는 경영자립이 가능한 구조로 설립하는데 중점을 뒀다.
철도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정부조달협정(GPA)이 ‘철도민영화‘의 초석이라고 주장한다. 코레일을 자회사로 분리하고, 민간자본 유치를 제도화하는 것은 나아가 ’철도민영화‘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10월 개정안에서 도시철도공사의 공사 물품 용역 계약이 국제입찰 조달 대상으로 돼, 외국 자본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에 철도노조는 정부가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을 통해, 철도시설공단의 핵심사업인 일반철도의 설계부터 유지·보수, 관리·감독 등을 모두 외국 자본에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또한 물류와 화물 부문을 분리할 경우, 시공권과 운영권 모두를 외국자본에 넘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이 철도사업에 투기자본을 끌어들인다는 논란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확정으로 점점 더 커지게 됐다.
철도노조, “수서발 KTX 자회사 출범은 철도민영화의 시작”
‘철도민영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5일, 코레일이 수서발 KTX를 자회사로 출범할 것을 확정했다. 코레일은 민영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민간자본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고 전했다. 코레일 지분을 당초 30%에서 41%로 확대하고 공공자금을 59%로 결정했다. 또한, 코레일은 2016년부터 영업흑자 달성시 매년 10% 범위 내에서 지분매수하거나 총자본금의 10%범위 내 출자비율을 확대할 수 있다. 향후 코레일은 흑자 전환시 100%까지 지분확보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 밖에 선로 배분비율의 공정성 확보, 수요전이로 코레일 경영악화시 정부지원 등이 포함됐다. 코레일과 정부는 주식 양도·매매의 대상을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에 한정하고, 이를 정관에 명시하여 민영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한 철도노조는 12월 9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전국 218개 시민단체 등과 철도노조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소통 없이 ‘철도민영화’를 추진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정부조달협정(GPA)에 이어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사실상 민영화의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수서발 KTX의 코레일 지분이 41%이라 해도, 코레일이 마음만 먹으면 정관 변경이 가능하고, 그로 인한 민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수서발 KTX 자회사의 주식 양도·매매의 대상을 공공부문에 한정한다고 해도, 자회사 자체가 민간 법인인 만큼 언제든지 정관 개정을 통해 민영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번 철도파업은 국토부와 코레일 측의 일방적인 정책이 자초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수서발 KTX 자회사 정관을 변경할 수 없는 확실한 규제 장치가 없어,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의혹에 불을 붙이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 언제든지 민간에 매각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하는 것보다, 100% 정부 출자 기업을 만드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철도경쟁 도입은 부채를 스스로 갚기 위한 길“
‘철도민영화’ 논란에 정부는 거듭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정부조달협정(GPA)은 건설공사, 시설유지관리, 장비조달 등 공공 발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철도운영 부문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자본의 참여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계열사 형태의 수서발 KTX 회사를 만들어, 경쟁모델로써 내부경쟁을 통해 경영의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불투명한 경영구조를 개선하고, 방만경영을 시정하기 위해 경영상태를 비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3년 철도부채는 최대 35조원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로 계속 운영된다면, 철도부채는 2020년이 되기 전에 50조원이 넘어서게 된다. 그 원인으로 실제 비용의 60%인 낮은 요금,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실패, 코레일·철도시설공단의 분리로 인한 비용 낭비, 과도한 임금 체계 등이 꼽힌다. 철도부채를 갚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극약처방이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다.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를 안전하게 개통하기 위한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부문 자금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철도공사가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게 되면 지분을 더 늘려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코레일과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수서발 KTX 자회사 출범은 ‘철도민영화’라는 철도노조의 주장이 ‘기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경쟁체제 도입과 공공자금 유치가 철도부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데 100%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레일이 화물, 차량, 유지·보수 등 자회사를 설립해도 2016년부터 영업흑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감량경영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코레일은 용산역, 서울역발 KTX 운영만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코레일이 차후 지분을 확보할 능력이 될지 의심된다. 철도노조는 자회사 설립보다 코레일 내부에 사업부를 만들어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전한다. 특히, 비싼 선로 사용료, 낮은 운임비 현실화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철도 부채 문제가 풀린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와 정부의 소통 없는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코레일은 노동조합원을 고발하기에 이르고, 경찰은 철도노조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철도파업 역시 전국으로 퍼져,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각각의 입장만을 고수한 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행보는 어느 쪽이든 국민의 공감을 얻기에 힘들어 보인다. 코레일 자회사 설립이 철도부채를 스스로 갚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면, 철도노조와 시민단체에서 우려하고 있는 ‘철도민영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담보장치가 필요하다. 서로가 묻고 따져보고 현실적인 합의 방안을 찾아, 철도민영화가 ‘기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