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의 면적(2015년 기준)/자료=urban114]
일제강점기 1936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해 시작된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은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당시엔 도시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이 필요하였기에 교통의 기본인 도로와 도시환경 보전을 위한 공원 중심으로 도시·군계획시설이 결정됐다. 하지만 근대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도시·군계획시설은 구체적인 집행계획을 차치한 채 결정되었고,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미집행 시설을 남기게 되었다.
장기미집행 시설의 가장 큰 쟁점은 사유 재산권의 침해이다. 사유 재산권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권리로 인정되었지만,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생긴 여러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가 개입함에 따라 개인의 재산권도 공익을 위해 제한되어야 할 존재로 변화되었다.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은 이러한 사유 재산권의 보호보다 도시기능 유지에 초점을 두었고, 이는 결국 장기간 사유 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한 개인의 피해로 이어졌다.
결국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공익 목적의 도시계획 결정 고시로 인한 토지재산권의 제약에 대하여 손실보상 규정을 두지 아니하고 장기간 사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의 재산권 보장, 정당보상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결정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00년 1월 도시계획법 개정을 통해 △매수청구권제도 도입 △일몰제(자동 실효제) 도입 △주기별 도시·군계획시설 재검토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매수청구권의 경우 지목이 대지인 경우로 제한했고, 그나마 예산부족으로 청구토지의 일부만 매수해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일몰제 역시 2000년부터 20년이 경과하면 해당 규제가 해제되도록 했으나, 1980년에 지정된 시설은 40년이 경과해야 해제가 가능해 장기미집행 시설을 합법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며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장기미집행 시설에 대한 보상 또는 집행을 추진하거나 불필요한 시설은 해제하도록 하였음에도 사유 재산권의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실질적인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8월 발표한 국토교통부의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2월 말 기준 도시·군계획시설로 결정된 곳 중 실제 개발 집행을 위해 손도 대지 않고 있는 미집행시설의 면적은 1,328㎢에 이른다. 계획만 잡힌 채 10년 넘게 방치된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의 면적만 869㎢로 서울시 면적의 1.4배, 여의도 면적의 308배에 이른다.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하고는 10년 이상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땅이 442.2㎢(50.9%)로 가장 넓었고 이어 도로(250.5㎢·28.8%), 유원지(67.2㎢·7.7%), 녹지(44.0㎢·5.1%) 등의 순이었다. 10년 이상 미집행 된 도시계획시설을 모두 지을 경우 토지 보상비와 시설비로 약 139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2014년 12월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 해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규모 등이 도시·군의 여건 변화로 인하여 현 시점에서 불합리하거나 집행 가능성이 없는 시설을 재검토하여 해제하거나 조정함으로써 토지이용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본 가이드라인은 2015년 8월 11일 국토계획법 개정을 통해 오는 12월 31일까지 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을 전면 재검토함에 있어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국토부는 지난해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 토지소유자가 3단계에 걸쳐 지자체와 국토부에 해제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국토계획법」을 개정한 이후, 토지소유자의 해제 신청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법률 위임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차원에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18일부터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10년 이상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에 대해 해당 토지소유자가 3단계에 거쳐 도시·군계획시설 결정 해제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 해제신청제 절차도/자료=국토부]
내년 1월 1일부터 장기미집행 도시·군계획시설 해제를 원하는 해당 토지소유자는 1단계로 서식에 따라 입안신청서 등 서류를 작성해 입안권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입안 신청이 접수되면, 입안권자는 해당시설의 집행계획이 수립된 경우 등 특별한 반려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시 해제를 위한 도시·군관리계획을 입안하게 된다. 1단계 신청 결과 해당시설에 대한 해제 입안이 되지 않거나 결정이 해제되지 않는 등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추가적으로 결정권자에게 해제신청을 할 수 있다. 2단계 해제신청 결과에도 불구하고 해당 도시·군계획시설 결정이 해제되지 않는 경우, 토지소유자는 최종적으로 국토부 장관에게 해제 심사 신청이 가능하다. 해제심사 신청에 따라 국토부 장관은 입안권자·결정권자의 관련 서류 검토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권자에게 해제를 권고하고, 결정권자는 해제 권고를 받으면 6개월 이내에 해당 도시·군계획시설 결정을 해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그간 500㎡ 이상 도축장과 지자체장이 설치하는 1천㎡ 이상 주차장은 의무적으로 도시·군계획시설로 결정한 후에 설치하도록 했으나 시설이 복합화되고 설치 여건 등의 변화에 따라 개별법으로 설치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어 필요한 경우에는 도시계획시설 결정 없이도 도축장, 주차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자체가 지정하는 경관·미관·방재·정비지구 등 용도지구가 필요 없어진 경우 용도지구의 변경·해제를 검토하도록 기준도 규정했다. 용도지구 중에 경관지구, 미관지구가 지정되면 해당 용도지구에는 조례로 정해진 건축제한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나, 지자체 관할 구역 중 여건 반영이 필요한 일부 지역에는 일부 건축제한만 적용하여 차별화할 수 있도록 예외를 규정하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간 도시·군계획시설이 한 번 결정되면 수반되는 건축제한으로 인해 토지이용이 일부 제한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개정안에 따라 도시·군계획시설 해제신청제 등이 시행되면, 여건 변화에 따라 도시계획 변경·해제 등이 이뤄져 토지소유자 권리를 보호하고 토지이용 효율성이 증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