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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커뮤니티,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으로 가는 길 ③

국내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사례: 동피랑 마을

장은지 기자   |   등록일 : 2016-07-22 14: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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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마을/자료=통영시] 


동피랑 마을은 통영시 정량동·태평동 일대의 산비탈 마을로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피랑(비탈)’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외지 하층민들이 기거하면서 만들어졌고, 그 후 지금까지 저소득층 서민들의 오랜 삶터로 이어져왔다. 2006년 동피랑은 철거 예정지였다. 통영시는 마을을 철거하고 충무공이 설치한 옛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약간의 보상비를 받고 마을을 떠나야했지만, 무허가 주택이 대부분이라 철거가 되면 제대로 된 보상도 받기 힘든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푸른통영21’은 재개발 저지를 위해 통영시에 1년의 유보기간을 요청했고, 동피랑 현지를 답사하여 지역의 역사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 문화로 재조명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 문화와 삶이 어우러지는 마을만들기를 통해 예향 통영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어 공공미술을 통한 통영의 명물로 재조명하고자 했다.

먼저, 동피랑 마을은 높은 지대로 인해 어디서든 마을 담장이 보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벽화작업을 시작했다. 푸른통영21은 지역혁신사업프로그램을 활용하여 3천만 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색과 그림이 있는 골목’이라는 주제로 전국단위의 벽화 공모전을 진행했다. 공모전에는 미술학과 대학생, 화가, 일반인 등 총 19개팀이 참가하여 7일간 19개의 집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또한 동피랑 축제를 열고 골목백일장 및 사생대회, 골목음악회 등 지역주민과 인근학교 학생, 그리고 벽화 참가자들이 함께 즐기고 나누는 마을 축제를 진행, 그 의미를 더했다.

 

푸른통영21은 이후 벽화 참가자들의 시상을 통해 상금을 수여하고, 이들의 작업과 결과를 언론에 보도하여 홍보를 극대화시켰다. 또한 동피랑에 대한 상세한 안내와 내용이 담긴 안내용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동피랑 마을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탄생한 동피랑은 철거계획이 미뤄지고 재개발 대상지에서 보존대상지로 바뀌게 되었다. 2008년에 벽화 보충작업을 거쳐 동피랑 초대전을 열었고, 방송사 촬영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면서 외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2008 민관포럼에서 최우수상, 2008전국마을만들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안팎으로 동피랑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피랑 골목그림 공모전 작업/자료=통영시] 

 

동피랑 벽화 공모전은 2년에 한 번씩 개최하여 벽화 그림을 전면 교체, 지속적인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2010년에도 ‘동피랑블루스’라는 제2회 벽화 공모전이 진행됐고 1차 때보다 많은 42개팀이 참가하여 동피랑의 벽화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통영시에는 ‘동피랑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레지던시를 진행하고 쉼터인 쌈지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주민들을 위한 소득원을 발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조성된 쌈지교육장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전시가 진행되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후 2012년에는 ‘땡큐 동피랑’이란 이름으로 제3회 벽화 공모전이 진행됐고 국내 70개팀, 100여 명이 참가했다. 매회 그렇듯 주민들의 찬성하에 벽화는 새롭게 칠할 수 있었는데, 특히 3회 때는 참가자 소집일부터 주민들이 참석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벽화를 그릴 땐 관광객도 붓을 들고 색을 칠하는 등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동피랑이 벽화로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많아짐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도 나타났다. 우선 관광객들의 부주의한 활동과 사진촬영, 밤낮을 가리지 않는 방문 등으로 주민들의 사생활에 침해를 입기 시작했다. 이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져 결국 이사가는 주민이 생기게 되었고, 많은 주민들도 보상을 받은 뒤 이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빈집을 매입하는 사람들은 외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속속 들어와 카페나 상점 등을 차려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동피랑에 있는 카페 중 지역 주민은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방문객들이 동피랑에서 쓰는 돈의 소비가 주민에게 대부분 돌아가지 않았고, 동피랑만의 고유한 관광상품도 부족했기 때문에 주민들을 위한 소득창출도 어려웠다. 이로 인해 마을주민과 푸른통영21은 꾸준한 회의와 의견 소통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도출해냈고, 2013년 2월 동피랑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게 되었다.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발기인 모임/자료=통영시]

‘동피랑생활협동조합’은 관광객들에게 동피랑 기념품을 개발·판매함으로써 고용 창출과 주민 소득을 통해 관광객과 주민이 상생하여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도비 보조사업인 ‘마을기업’ 유치를 할 수 있다. 동피랑생활협동조합은 2013년 5월 ‘동피랑사람들’이란 이름으로 행정안정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으로 지정돼 동피랑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사업에 착수했다. ‘동피랑사람들’은 동피랑의 모든 주민 80명이 조합원으로 되어있고, 통영 제1호 생활협동조합으로서 주민의 소득증대와 고용창출, 복지 등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지역마다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의 의미로 벽화만들기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다. 관 주도이거나 민간 영역에서 진행하는 등 주최도 조금씩 다른데 대부분 성공사례보다는 관리 부족이나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결과가 많다. 그러나 동피랑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통영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인 동피랑이 없어질 것을 우려하여 민간 주도로 추진한 마을 벽화만들기는 결국 민과 관, 그리고 주민 협업의 가장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다.


동피랑의 벽화만들기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2007년에 처음 벽화 공모전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행안부에서 민관협력으로 수상을 하고, 마을만들기의 우수사례로 끝났다면 지금 동피랑의 명성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2년에 한 번씩 동피랑 벽화 공모전을 통해 그림을 바꾸어주면서 대외적인 홍보를 하고, 벽화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레지던시 공간이나 교육장을 만드는 등 끊임없는 발전을 모색했다. 또한 ‘동피랑생활협동조합’을 조직하여 주민들의 소득 창출과 복지에 도움이 되고, ‘동피랑은 주민들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등 이해와 협동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것은 동피랑의 환경을 최대한 지키면서 주민들과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작업으로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동피랑이 지속적으로 발전을 꾀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지역문화활동가를 통한 민관과 주민 협업의 결과로서 타 지역사회에 시사점을 준다.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지역 사회의 환경과 개발계획’의 성격을 띄고 있는 푸른통영21은 동피랑 벽화마을 조성을 시작으로, 연대도 에코아일랜드나강구안 뒷골목 되살리기 등 통영의 낙후된 마을을 주민과의 협업을 통해 문화로 재생시키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동피랑 벽화만들기도 이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속적인 주민 협의 결과를 사업에 반영하고, 지자체와의 교류를 통해 자생적이고 모범적인 결과를 도출하였다. 물론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조성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까지 책임지고 중심 역할을 한 것은 벽화만들기 성과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동피랑의 홈페이지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동피랑에 대한 사업은 시민단체 푸른통영21과 행정, 교육계, 경상대 해양과학대학, 지역 내 자생문화지킴이 ‘드러머’ 및 마을주민자치위원회가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낸 협력과 소통의 장이었다. 민간의 협치와 공감대 조성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사업이었다. 공무원과 시민단체, 학교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루어낸 작은 축제의 결과인 것이다. 벽화 공모전을 중심으로 한 마을축제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피랑 벽화마을의 자생력에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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