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 디자인이 적용된 쌍문1동 골목길/자료=도봉구]
김현숙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CPTED의 실천 전략으로 ▲자연 감시와 활동의 활성화 ▲영역성의 강화와 접근 통제 ▲유지와 관리 등 이 세 가지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도시는 어떻게 계획하고 운영해야 할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도시 공간의 이용자 모두가 서로 무의식적인 범죄의 목격자이자 감시자가 되는 ‘자연 감시’의 제도화이다. 건물이나 시설물을 배치할 때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없애고, 가시권을 최대화해서 각자가 해당 공간을 이동하거나 사용할 때 타인을 위해 감시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이나 도시의 공간을 사람이 은신하거나 숨을 수 없도록 계획해야 하고, 창문을 골목길과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 담장은 투시형으로 설치하거나 높이를 낮게 해서 상시적으로 거리와 놀이터 등을 살필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담장 자체를 허물기도 해야 한다. 또한, 출입문 주변에는 직접 조명을 설치하여 손님이 현관을 쉽게 찾고 거주자와 이웃 주민들이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주차장도 외부에 개방되도록 계획해야 한다. 골목길은 보행자를 위한 조명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가급적이면 직선으로 계획한다. 가로는 적절한 보행 폭을 확보하고, 조경 수목 및 조명 시설은 적절한 크기와 간격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런 무의식적 상호 감시를 통한 범죄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간이 가능한 한 열려 있게 해야 하고, 더 많은 거주민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건물과 도시의 공간은 최대한 이용될 수 있도록 설계 및 계획해야 하고, 시설물들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야 한다. 소위 ‘활동의 활성화’가 최대한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민들이 자주 이용할 수 있는 마을회관 등의 공간이나 놀이터 같은 시설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이들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거나 오가는 주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자연적인 감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버려진 자투리 공간을 작은 공원으로 기능하도록 조금만 변화를 주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고, 지역 주민들이 벤치에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미국의 경우, 슬럼가의 빈 공터에 금을 긋고 벽에는 원을 그려 거리의 농구장으로 만들었더니 청소년들의 탈선과 범죄가 현격하게 줄었다. 이것이 경찰관을 추가 배치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좋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미 그 유효성은 학술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범죄예방 환경을 설계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은 적절하게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통제’ 전략은 잠재적 범죄자를 경계하여 공간을 자연스럽게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출입문에 잠금 장치 또는 보안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창문은 파손이나 훼손이 어려운 재질의 방범창을 설치하도록 한다. 특히, 건물 밖으로 노출된 가스 배관을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방범 시설의 설치를 규정하고, 주택과 주택 사이의 이격 공간에는 출입통제 시설을 설치하도록 한다. 최근 지역별로 상습 성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데, 이들의 주요 침입 경로가 가스 배관이나 주택 사이의 좁은 이격 공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사소한 기준만 적용했더라도 많은 여성들을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접근을 통제한다는 것은 여러 수준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해당 영역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경우는 접근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며, 또 어떤 경우는 적당하게 접근을 허용할 수도 완전히 개방할 수도 있다. 이때 도시 공간의 모든 이용자에게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지역 사회의 소속감을 제공하기 위해 공간들은 방어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하나의 핵심적인 전략이 나오는 데, 그것은 바로 ‘영역성의 강화’이다.
예를 들자면, 골목길에서 주택이나 보행 공간, 가로 시설 및 조경 식재 공간을 분명하게 구분하거나, 주택 주변과 골목길의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의 한 평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담장이나 벽면에 밝은 분위기를 위한 도색 또는 벽화를 적용하며, 정기적으로 이를 개․보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제도화한다. 또한 전봇대, 담장, 출입문 주변 등에 명료한 안내나 주소 표지판을 설치하거나, 가로 시설물 및 건물 외관을 통일성 있게 계획하여 영역성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주민에게 소속감을 제공함으로써 일정 영역 내에서 심리적 안정을 부여하고, 주거 영역 내에서 범죄의 발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범죄예방환경설계의 전략 중 하나는 ‘유지와 관리’이다. 시설이나 공간을 앞에서 언급한 전략들대로 제대로 설계하고 계획하고 배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유지와 관리’를 위한 계획도 동시에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한 규제나 재정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유지와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거주자들의 관심과 참여이다. 이런 요소들을 확보한다면 재원을 마련하기도 상대적으로 쉬워질 것이며, 그들의 아이디어로 시설과 공간 자체가 범죄 예방에 맞도록 지속적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이다.
범죄예방을 유도하는 도시 환경을 만들더라도, 실제로 범죄를 예방하는 구체적인 것은 바로 사람이다. 계획된 대로 거주민들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도시 디자인은 소용이 없다. 거주민들이 범죄 예방의 핵심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을 우리 동네라고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수만큼 들어서야 한다. 공간을 공유하고 동일 공간에서 활동을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감정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을이 중심이 되는 마을 공동체의 활성화로 자발적 의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앞서 제시한 범죄 예방을 위한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작업은 상대적으로 더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