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인의 과거와 현재/자료=하이라인(http://www.thehighline.org/)]
프랑스 파리에 프롬나드 플랑테가 있다면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첼시에는 하이라인이 있다. 1857년에 조성된 센트럴파크 이후 뉴욕은 미국을 대표하는 공원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고가철도에 조성된 이 공원은 주변 건물과 직접 맞닿아 있어 대부분의 시야가 자연이 아닌 도시공간으로 열려 있다. 센트럴파크가 정온한 느낌의 공원이라면 하이라인은 뉴욕 브로드웨이의 부산함에 가까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공원이다.
1934년 뉴욕 맨해튼 서부에 위치한 대규모 공업지대의 제품을 수송하기 위해 서부 수송선(West sideline)이 건설됐다. 하지만 1950년대에 고속도로를 이용한 트럭 수송산업이 성장하면서 철도 수송수요가 감소하였고, 1980년에 이르러 이 철로가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서부 수송선은 뉴욕 펜실베이니아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로로 재탄생하였으나, 펜실베이니아역(맨해튼 34번가) 남쪽에 해당하는 1.45마일(2.33㎞)의 구간은 철도 폐쇄 이후 25년간 방치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맨해튼 서부선 주변의 토지주들은 뉴욕시에 고가철로 철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99년 하이라인 보전과 공공공간 전환을 위해 시민들이 주축이 된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비영리조직이 설립되었다. 2004년 뉴욕시는 하이라인 공원 조성을 위해 5,000만 달러(약 5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였고, 같은 해 하이라인의 친구들과 뉴욕시는 하이라인 설계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을 뽑았다. 당선팀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가 주축이 된 조경·건축·식재 합동설계팀이었다. 2006년 뉴욕시는 하이라인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CSX Transportation, Inc.로부터 토지를 양도받아 하이라인 공원 조성을 시작하였다.
2009년 6월 1단계, 2011년 6월 2단계가 개통하였고, 2014년 9월 3단계가 개통하였다. 하이라인 공원의 전체 길이는 2.33㎞이고 맨해튼 갠스부르트가(Gansevoort Street)에서 34번가까지 총 22개의 블록을 지난다. 공원의 폭은 10~15m이고 높이는 약 7.5m이다. 1단계와 2단계 구간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30번가에서 34번가 사이의 3단계 부지는 2018년 완공 예정인 허드슨 야즈(Hudson Yards) 재개발사업 부지를 끼고 서쪽으로 크게 도는 구간이다.
하이라인은 정치인, 공무원과 조경가, 도시설계가의 협력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이를 정치적·경제적 동력으로 삼아 만들어진 공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비록 하이라인을 완성해낸 것은 뉴욕시와 공모전에 당선된 설계팀이었지만, 공원화를 향한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의지 없이는 하이라인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이라인을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의 하이라인’ 혹은 ‘제임스 코너의 하이라인’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다.
1999년 하이라인 인근에 살던 조슈야 데이비드(Joshua David)와 로버트 해먼드(Robert Hammond)는 하이라인을 보전하고 공공공간으로 개발하는 운동을 벌이고자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뉴욕시 정치·경제적 리더들과 시민들을 꾸준히 설득하여 하이라인 공원화를 실현해 냈을 뿐만 아니라 꾸준한 민간 모금과 참여를 바탕으로 연간 30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용의 대부분을 조달하고 있다. 이외에도 배리 딜러(Barry Diller) IAC/Expedia 회장과 그의 부인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가 하이라인 조성을 위해 뉴욕시에 총 3,500만 달러(약 350억 원)을 기부한 것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가와 시민들의 기부가 뒷받침되었다.
하이라인 개발을 가능하게 한 데에는 뉴욕시의 지원 역시 매우 컸다. 하이라인 1~2단계 구간에 투입된 총 사업비 1억 5,000만 달러(약 1,500억 원) 중70% 이상(1억 1,220만 달러)을 뉴욕시 예산으로 충당하였다. 나머지 예산 중 2,070만 달러는 연방정부 예산, 70만 달러는 주정부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하이라인의 친구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약 4,400만 달러를 후원하였다.
재정적인 지원뿐 아니라 제도적인 지원으로는 개발권양도제(TDR)를 활용한 용도지역 변경이 있었다. 뉴욕시는 2005년 6월 하이라인이 포함된 맨해튼 첼시 서부지역에 주거·상업개발을 촉진하고 하이라인을 공원화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특별용도지구(Special West Chelsea District)로 지정하였다. 이 특별용도지구는 하이라인을 중심으로 약 30m 폭의 회랑(High Line Transfer Corridor)을 포함하고 있다. 이 회랑에 포함된 부지는 하이라인의 경관, 통풍 및 채광을 확보하도록 건물 높이와 규모, 디자인의 제한을 받는다. 하이라인에 인접한 건물을 재개발할 때에는 건축선을 하이라인과 같은 높이로 5~8m 후퇴(set back)시켜야 한다. 또한 전체 부지의 20%를 하이라인과 연계된 녹지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에 대한 보상으로 개발권양도제를 활용하여 개발이 제어된 부지의 개발권을 해당 지구 내 특정 지역의 개발권(용적률)으로 보전해 주고 있다.
[하이라인 1구간(Gansevoort Street to West 20th Street)/자료=하이라인(http://www.thehighline.org/)]
하이라인은 관이 아닌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공원이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그들은 폐허가 된 고가철도의 일괄적 공원화를 배제했고, 가능한 철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되 주변의 건축물과 허드슨 강변의 전망 등과 어울릴 수 있도록 구간마다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는 도시와 공원의 새로운 관계의 창출이다. 하이라인의 대표설계가인 제임스 코너는 도시로 둘러싸인 공원인 하이라인을 ‘차경(borrowed landscape)’이라고 지칭하였다. 우리가 근대 도시공원에서 자연을 감상했다면, 하이라인에서는 도시를 감상한다는 것이다. 하이라인에서는 공원 외부, 즉 도시를 바라보는 주요 조망점들에 작은 전망테라스를 마련하여 좁은 폭의 단점을 극복하고, 이용자들이 쉬면서 도시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건물 사이로만 통과하던 1·2단계 구간과 달리 3단계 구간은 허드슨강(Hudson river)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뉴욕의 멋진 스카이라인과 허드슨강의 열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3단계 구간에서 해가 지는 허드슨강을 바라보고 기대 누울 수 있는시설물을 기존 철로를 따라 배치한 것은 ‘차경’을 활용한 설계기법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이라인의 특징으로는, 하이라인 3단계 구간은 근대산업유산의 낯선 감각을 극대화하였다는 점이다. 하이라인의 1·2단계 구간에서는 새로 식재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초목들, 곳곳에 있는 예술작품과 세련되고 매끈하게 제작된 화강석 포장재 위로 뉴욕을 관통하며 거니는 매력이 있다. 반면에 3단계 구간은 1·2단계와 달리 철로가 폐쇄되고 25년간 방치되어 온 하이라인의 모습을 최대한 보전하고 있어 도시의 잃어버린 과거와 새로운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선형 공원인 하이라인이 ‘걷기’ 좋은 공원이라는 점이다. 선형 공원은 ‘도시공간과의 근접성’과 ‘공간체험의 연속성’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하이라인은 이 두 가지를 잘 충족한다. 하이라인은 선형 공원 중에서도 폭이 매우 좁은 편이라 다양한 활동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걷기에 집중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고 움직이는 도시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
한때 모든 도시들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갖기를 원했던 것처럼, 이제는 ‘하이라인’을 갖기를 원한다. 미국 내 다른 도시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과거의 역할을 다한 철도나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이라인을 모델로 서울역 고가교를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른바 ‘하이라인 효과’다. 동기는 역시 도시 경쟁력 확보와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하이라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장밋빛 환상만은 아니다.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 조성 사업은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 가능성의 환경·경제·사회적인 요소들로 살펴보자면, 하이라인이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환경을 제공하고 주변지역의 지가를 2배 이상 상승시켰으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환경적·경제적 지속가능성은 충분히 충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라인이 조성됨으로써 많은 중소상인들과 저소득층 주민들이 타의로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철저히 간과된 것이다. 하이라인은, 공원 개발이 모든 이들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며, 어떠한 지역에 공원과 공공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그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결정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