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동쪽, 성산 ‘커피박물관’ 내에 위치한 ‘빛의 벙커’는 길이 100m, 폭 50m, 높이 10m의 길쭉하게 생긴 건물이다. 외관만 봐서는 도무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다.
‘빛의 벙커’는 과거 1990년대 과거 국가기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설치됐던 지하벙커이자, 일반인에게 출입금지구역이었던 숨겨진 공간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이 센터는 2000년대 초 용도폐기로 방치됐다가 2015년도부터 제주 평화축제 2015, 하버드대 아카펠라 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과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2018년 프랑스 예술전시회사인 컬처스페이스와 합작해 ‘아미엑스’ 전시관으로 개조한 뒤 ‘빛의 벙커’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약 900평의 대지에 축구장 2/3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건물은 벽 두께가 3m에 이르는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된 독특한 전시 공간이다.
일반인에게 출입금지였던 공간인 만큼 벙커의 입구는 쉬이 볼 수 없지만, 나무와 철제울타리에 둘러싸인 출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숨어있던 벙커의 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육중한 철제문 안으로 들어가 빛의 벙커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예술 작품에 들어가 있는 듯 생경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편집한 명화들이 벙커 안에 설치된 90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사방의 벽과 바닥에 투사되고, 69대의 스피커에서는 음악계 거장들의 곡이 관람객들의 귀를 사로잡아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최대한으로 자극해 예술에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지하 벙커라는 특성이 외부의 빛과 소음을 완전히 차단해 영상과 음향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또한 전시장 이곳저곳에 비치된 프로젝트에 의해 관람객의 몸에도 영상이 비쳐 재생되는 데 이곳은 사방으로 전시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관람에 구애를 받지 않아 작품 속 인물이 움직이는 것인지, 관람객인지 경계가 모호해져 보는 재미가 더해지곤 한다.
이는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들에게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고전 명화를 고퀄리티 형식의 미디어아트로 접할 수 있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던 도시개발은 옛 건물을 부수지 않고 트렌디한 공간으로 창출하는 방향으로 도시재생의 방향을 틀었다.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기존의 버려진 공간을 활용하여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한 사례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