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HOME > NEWS > 주간특집

[코로나19 위기극복 특집] 도시와 감염병의 관계②

과거 유럽도시의 공중위생과 조선의 위생 개선 사례

유재형 기자   |   등록일 : 2020-04-17 18:05:18

좋아요버튼0 싫어요버튼0

이 기사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목록으로 돌아가기

[18세기 프랑스 화가 미셸세레가의 흑사병/자료=위키피디아]

인류의 역사를 바꾼 질병 중 페스트(흑사병)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인 질병으로 꼽힌다. 도시 또한 흑사병에 대응하기 위해 공중위생 분야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게 됐다.

흑사병이 인류 역사상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역사 기록으로는 6세기 독일과 동로마제국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것으로 추정 된다. 특히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약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4년 사이에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줄고 중세 유럽사회의 봉건제를 무너뜨린 계기가 됐다.

페스트는 쥐에서 전파된다고 알려졌으며 위생이 좋지 않았던 당시 대응할 방법이 없어 시체와 환자가 쓰던 물건을 불태우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책이었다.

당시에는 현재 도시계획에서 다루는 상하수도, 일조, 채광 등의 기준을 갖지 못한 도시의 고밀화가 필연적이었기에 도시의 위생환경은 비참했다. 이에 공중위생법이 생기고 주거지와 오염원을 분리하는 등 공중위생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도시계획 기준들이 기원하게 됐다.

이렇게 인류가 도시에 대규모로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감염병도 함께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교통이 발전하면서 감염병의 전파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는 행정과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열악한 위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유럽에서는 1860~1870년대에 이르러 맑은 물을 공급하는 수도와 하수시설을 갖추게 됐다. 지나친 주민의 밀집상태, 열악한 주거환경, 대중교통의 부재 등에 대해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1850년대 프랑스는 파리 중심가는 뉴욕 센트럴 파크의 두 배가 채 안 되는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100만 명 주민의 3분의 1이 좁고 미로처럼 엉킨 어두운 길을 따라 밀집해서 살고 있었다.

도시 중심부의 빈민굴 상태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떨어지지 않게끔 했고, 나폴레옹3세는 파리 시장 오스만으로 하여금 도시계획에 따른 대수술을 감행해 파리를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도시로 개조하게 했다.

이것이 선계가 돼 1870년 이후 유럽 도시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도와 하수시설, 그리고 쓰레기 수거체계 등이 마련돼 환경정화 및 공중위생의 향상이 도모됐다.

영국의 애드워드1세는 도시위생 개선을 위해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그 누구도 도시 내에 배설물, 거름, 혹은 다른 오물을 쌓아두는 것을 금한다. 배수로에 천과 아마포를 넣는 행위도 해선 안 된다. 나무줄기나 목재가 들어갈 경우 신속히 제거할 것을 명한다. 대변은 신속하게 치울 것이며, 배수로는 수시로 청소하라. 또한 도시 네 구역에 각각 공중화장실을 둘 것을 명한다.”

도시의 열악한 위생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공중위생법은 영국에서 1848년 만들어져 법적 규제에 의해 시가지 환경의 정비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각국에 전파됐다. 이후 근대 도시계획법 제도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에서도 공중위생에 문제를 인식하고 도시계획을 통한 해결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박제가는 자신의 저서 북학의에 청나라의 거리 상활을 예로 들면서 조선시대 당시 한양도성의 거리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중국은 똥을 금처럼 아끼고, 길거리에 재도 남기지 않는다. 말이 지나가면 삼태기를 들고 그 꽁무니를 따르며 말똥을 줍고 길가의 백성은 매일 광주리를 끼고 삽을 메고서 흙 속의 말똥을 골라낸다. 똥은 모두 네모반듯하거나, 혹은 삼각형이나 육각형으로 쌓고 그 아래에 도랑을 파서 물에 쓸려가지 않게 한다. 똥을 사용할 때에는 물에 섞어 걸쭉한 진흙처럼 만들어 바가지로 퍼서 쓰는데, 대게 그 효력을 고르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똥을 말려서 사용하니 효력이 흩어져 완전하지 못하다. 도성의 똥을 다 수거하지 못하여 악취와 오물이 길가에 그득하고, 하천의 다리나 석축에 덕지덕지 말라붙어 큰 장마가지지 않으면 씻기지도 않는다. 개똥이나 말똥이 항상 뒤덮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니, 논밭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똥이 이미 넘쳐 나니 재는 모조리 도로에 버려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차마 눈을 뜰 수 없고, 휩쓸려 나부껴 모든 집의 음식물을 불결하게 만든다.”

박제가의 글을 미루어볼 때 이미 하천은 인분 등으로 인하여 오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를 음용하는 도성민에게 어느 정도 피해가 미쳤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있어 안전한 상수원 확보는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최대 인구 20만이나 되는 한성부 백성이 거주하는 공간에 화장실이 요소요소 설치됐고, 구한말인 1906년 공중화장실을 서울 각처에 증설하였다는 ‘승정원일기’의 글귀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고종의 대 도시개조사업계획/자료=대한제국의 서울황성만들기. 이태진]

또 1800년대 후반 대한제국시기에 도시개조사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치도사업이 시행됐다.

한성부에서는 “지금 사대문을 통하여 다니는 큰길은 정부에서 수리하거니와 각 동리의 거리와 작은 골목길은 그 동리에서 수리하되 길과 문 앞을 편리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내부 훈령을 받들어 방을 붙이니 인님들은 다 알고 준행하여 어김이 없게 하라”고 동네마다 방을 붙였었다.

도시개조사업은 크게 도로 및 하천정비, 새로운 중심 건축물 축조, 공원조성, 서구적 시설 도입, 산업지역 설정이라는 다섯 가지 측면에 있으며 이때 최초의 도시공원인 탑골공원이 등장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의 대한제국시대의 도시계획 저서에 따르면 탑골공원은 궁궐 내 정원과 달리 도시의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이 되는 도시공원은 도시의 허파로서 시민을 위한 도시의 위생을 개선한 사례였다.
 
이처럼 감염병 등에 의해 도시에서 공중위생의 역할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공중위생관리업은 2011년 1만622개에서 2019년 1만4689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코로나19 #위기극복 #감염병 #도시계획 #공중위생 #페스트 #흑사병 #공중위생법 #공중위생관리업 #박제가 #공중화장실 #승정원일기

kgt0404@urban114.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도시미래>에 있습니다.>

좋아요버튼0 싫어요버튼0

이 기사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공유하기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목록으로 돌아가기

도시미래종합기술공사 배너광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