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 연휴가 찾아왔다. 이미 기차표 예매는 매진사태를 기록했고,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 형제들과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한 사람들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올해 설 명절 역시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명절 준비를 도맡아 해야 하는 주부들은 물론이고 취준생, 노총각·노처녀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연휴를 마냥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명절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언제부터인가 ‘명절 증후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명절 증후군’이란 명절 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명절 증후군은 과도한 육체적 노동으로 인한 각종 근육통, 관절통에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어지러움, 불면, 불안, 소화장애와 같은 증상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명절이 부담스러워” 시댁 눈치 보는 주부들 장거리 운전과 교통체증으로 ‘피곤한’ 남편들 오지랖 넓은 질문에 “마주치기 싫다” 친척들
# 경기도에 거주하는 주부 박모(41)씨는 지난해 설 명절 이후 이혼을 결심했다. 시댁에 방문해 자식들을 돌보고, 차례 음식도 준비하면서 정신없을 때 남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심지어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난 박씨는 결국 남편에게 참았던 화를 내고 말았다. 매년 반복되는 명절 스트레스와 서운했던 일까지 풀어낸 박씨는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이혼하게 됐다.
# 결혼 2년차 남편 김씨(38)는 지난 설 연휴를 빌미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난 아내와 크게 싸우고 이혼했다. 처가와 시댁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서로의 가족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아내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 ‘명절 증후군’은 명절을 준비하는 주부들에 국한돼 겪는 일이었다면, 최근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 가속화되고 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30대와 노총각·노처녀는 노골적인 사생활 질문 때문에 명절 자체를 기피한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년 명절 기간 동안 가사일 분담 등으로 인해 부부갈등이 심화돼 설과 추석 등 명절이 끝나고 난 뒤 이혼건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명절 스트레스가 주부들만이 아닌 가족 구성원 전체로 확산되면서 가사노동은 물론 성묘, 수면부족, 스트레스, 장거리 운전까지 이 모든 것이 명절 스트레스로 자리 잡았다. 명절만 다가오면 심리적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에는 전통적 관습과 현대적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한국의 대표적 사회현상을 꼽을 수 있다.
명절 스트레스를 앓는 주부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남편도 예민해진 아내와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남편이 받는 가장 큰 명절 스트레스는 장거리 운전과 교통체증이다. 정체 속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장거리 운전은 큰 정신적인 피로를 동반한다. 만약 고부 간 갈등이 있으면 가운데서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여 긴장하기도 하고 명절기간 예민해진 아내와 다투다 보면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에 법원이 나서 ‘명절 증후군’으로 갈등을 빚는 부부를 위해 무료 상담 활동을 진행 중이다. 대구가정법원은 지난 1월28일부터 2월13일까지 ‘명절 전후 부부갈등 해소를 위한 전문상담’을 실시한다. 가족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로부터 부부갈등 해소·치유 등에 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대상은 ‘명절 증후군’으로 고민하는 부부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명절 스트레스는 일가친척들에게 노골적인 사생활 질문을 받는 자녀들에게도 나타난다. 특히 취준생에게 과도한 취업 걱정을 늘어놓거나, 노총각·노처녀에게 결혼 등의 사적인 질문이 오갈 때마다 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모두가 즐거워야할 명절 연휴가 썩 반갑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때문이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 조사결과에 따르면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친척들이에 듣는 말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20~30세대 구직자들이 80%가 넘는다.
취준생들이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는 ‘누구는 취직 했다더라’, ‘아직도 취직 못했니’, ‘빨리 취직하고 결혼해야지’ 등이 있었다. 20대에 비해 결혼에 대한 압박이 큰 30대는 ‘빨리 취직하고 결혼해야지’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자신감 상실이나 우울증 등 취업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직장인들도 명절을 앞두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직장인들은 ‘명절 연휴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남성은 ‘장거리 운전과 교통체증’을 여성은 ‘명절음식 준비 등 가사노동’이라고 답한 조사도 있다.
하루 빨리 평소 생활리듬 되찾는 것이 중요 각종 이벤트, 명절 스트레스 풀어줄 좋은 방법
반면, 명절 스트레스를 날리고 풍성한 연휴를 즐기기 위한 노력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명절 증후군에 대한 명확한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지만 명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명절 이후 하루빨리 평소의 생활리듬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추석기간에 쌓인 스트레스도 빨리 털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를 날려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남편들의 동참’이다. 명절에는 남편들이 아내를 도울 수 있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 남편이 함께 장보기와 음식장만, 설거지, 청소 등을 참여하고 함께 휴식을 취하기를 실천한다. 남편은 힘들게 차린 상차림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보다는 조금이나마 동참한다면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산책, 윷놀이, 영화보기, 노래방, 온천, 찜질방 가기 등 이벤트도 명절 스트레스를 풀어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명절이 지나면 고생한 아내에게 작은 선물을 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해법이라 할 수 있다. 또 아내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존중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면, 올 설 연휴를 별 탈(?)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kgt0404@urban114.com <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본 기사의 저작권은 <도시미래>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