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스위스 쮜리히 홈브레히티콘(Hombrechtikon) 아이히뷜(Eichbühl) 학교운동장/자료=ETH Zurich] 1930년대 미 연방정부는 대공항 기간 동안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WPA(Work Projects Administration) 연방공공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뉴딜정책 중 하나였는데, 불황기에 놀이터 조성 자금을 투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이 기간 동안 1만3000곳의 놀이터가 새로 만들어졌다.
뉴욕의 모제스 공원도 WPA 자금을 활용해 650여 곳에 놀이터를 새로 조성했다. 하지만 급격한 양적 팽창은 대개 질적 하락을 가져오는데, 이 결과로 미 전역 놀이터들이 우후죽순 늘어나지만 놀이터 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놀이터는 표준화되며 단순해졌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던 시기에 놀이터의 표준화, 단순화를 비판하며 자연주의 놀이터 운동이 태동했다. 표준화된 철제 놀이기구와 산업적으로 양산된 놀이기구보다 자연을 만지고 느끼거나 자연적 환경 속에서 놀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시작은 북유럽의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이너들은 어른들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아동친화적인 놀이터와 놀이 활동을 디자인하고 보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자연주의 놀이터 디자인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미 스웨덴은 자연환경을 지식과 학습을 위한 관찰과 경험의 터전으로 삼고자 했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미 1950년대 스웨덴에서는 미취학아동들의 야외 유치원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단지 야외수업뿐 아니라 휴식과 놀이의 기회로 제공된 야외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즐겁고, 재밌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자연 교육활동의 장소였다. 유럽의 또 다른 국가 스위스에서는 2차 대전 이후 뒤늦게 새로운 놀이터 디자인에 대한 시도가 시작됐다. 더불어 덴마크는 1940년대 후반 첫 번째 모험놀이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 유럽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모든 질서에 저항하고자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럽에서 모험놀이터가 확산됐다. 이러한 저항의식이 1970년대 미국에까지 전파됐다. 모험놀이터는 기본적으로 자연적 환경과 텅 빈 공터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구조를 만들며 놀 수 있는 놀이장소였다. 모험놀이터에서도 자연지형과 자연물은 간과될 수 없는 놀이 요소들이였다.
전후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베이비부머들의 등장과 도시 팽창에 따른 전후 대규모 재건축 붐이 일어났다. 이에 교육 당국이나 정부는 놀이터를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무엇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놀이터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1971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환경마당은 로빈무어(Robin Moore)와 허브 웡(Herg Wong)이 주축 되어 시작한 곳으로 초기 자연주의 놀이터 디자인의 모델이 됐다. 로빈무어는 기존 학교운동장에 환경마당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기존에 학교 운동장에 꽉차있던 콘크리트 놀이 구조물을 자연적인 학습의 공간으로 바꾸며, 나무, 바위, 연못, 심지어 작은 폭포와 실개천까지 학교운동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들은 이곳을 사랑했지만 서서히 자연적 요소들은 다시 제거되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들이 야구장과 잔디로 바뀌어 버렸고, 연못은 일반적인 놀이기구로 대체되었으며, 폭포와 실개천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환경마당에 적용된 아이디어들은 현재 학교운동장보다 주로 현대 놀이터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에도 학교 운동장들은 나무를 제외하곤 자연적 요소를 가능하면 배제하는데, 학교운동장 놀이터는 주로 안전과 표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1990년대에는 일군의 디자이너들이 놀이터에 채소 텃밭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2005년 출간된 리챠드 르부의 ‘숲속의 마지막 아이들’은 현대 아동의 자연결핍장애 증후군을 지적하며 ‘치유의 숲속 놀이와 활동’에 대한 점을 강조했다. 이 책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자연주의 놀이터운동의 영향은 21세기 북유럽의 놀이터들과 숲 유치원, 숲 놀이터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자연주의 놀이터가 확대되자 이에 대한 안전규제가 논쟁의 주제가 됐다. 자연주의 놀이터를 규제하려는 것에 대해 국제 ‘Everyplay’의 롤프 후버(Rolf Huber)는 “자연주의 놀이터도 자연처럼 규제대상에서 면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로 되묻기도 했다.
[참고자료 : 김성원의 적정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