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지혜가 깃든 건축기법을 탐하다

한반도 뒤흔든 지진, 대비책은 신라의 내진설계 공법
뉴스일자:2017-12-15 10:51:32
[주택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들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다/자료=urban114]

2016년 경주에 이어 2017년 포항에서도 역대급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동안 지진 안전국가로 알고 있었던 것이 오해로 여겨질 만큼 피해규모는 심각했다. 전국 60만 명이 동시에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이번 지진으로 1주일 연기됐다. 대한민국 입시제도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연이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그동안 지진 대비에 등한 시 해왔던 소규모 건축물들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한국전쟁 이후 국내 건축은 목재와 흙벽돌에 의한 건축이 주를 이었고, 급속도로 발전됐던 80년대까지만 해도 시멘트 블록이나 벽돌로 지어진 건축이 대부분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위한 기하급수적인 발전 탓에 노후화 된 소규모 건축의 안전 의식은 퇴화됐고, 전무했다. 이에 반해 연이어 발생한 지진에도 문화재들은 극히 일부만 훼손됐는데, 가장 강력한 규모였던 경주 지진 당시 우리의 문화재들은 미세할 정도의 피해만 남겼을 뿐 웅장함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어 우리 문화재에 숨겨진 전통 건축설계 방식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 흔든 경주·포항 지진

지난 2016년 9월12일 오후 7시 44분 경북 경주시 남서쪽 9km 지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50여분 뒤인 오후 8시 32분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1차 지진보다 더 강한 규모 5.8의 두 번째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규모 5.8의 지진을 ‘본진’으로, 첫 번째 발생한 규모 5.1 지진은 ‘전진’으로 설명했다.

경주에서 발생한 2차례의 지진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강력한 규모로 파악됐고,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서 강력한 지진을 느낀 뒤 불안감을 호소하며 119 신고전화가 빗발쳤다. 

규모 5.8 지진의 힘은 실로 막대했다. 경주 외에 경상도, 충청도, 제주도, 부산, 강원도,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그 진동을 느낀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며 곳곳에서 지진을 감지했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이 지진으로 부산에 있는 80층 고층 건물이 흔들렸으며, 서울 종로구에서도 3~5초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한 번의 지진이 아닌 여진의 힘이 계속해서 이어져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후 소규모의 여진이 연속해서 발생하며 10월 말까지 약 500회가 넘는 여진이 이어졌다. 여진을 규모별로 분석하면 규모 1.5~3.0의 여진이 484회로 가장 많았고, 규모 3.0~4.0의 여진이 17회, 규모 4.0~5.0의 여진이 2회 발생했다.

지진 여파로 부산국제금융센터에 대피령이 내려졌고, 부산 도시철도 1~4호선이 5분간 정지됐다. 울산화력발전소의 LNG 복합화력발전 4호기가 가동을 중지했으며, 월성원자력발전소도 1~4호기에 수동으로 가동 중지 조치가 취해졌다.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분포도/자료=기상청]

경주에 이어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강진은 국내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로 관측됐다. 또한 역대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지난 11월15일 오후 2시 22분 포항시 북구 북쪽 7km 지역에서 규모 2.2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22분 포항시 북구 북서쪽 7km 지역에서 규모 2.6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규모 2에서 3을 오가는 몇 차례의 여진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포항 지진은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경기 북부 지역과 제주에서까지 흔들림이 감지될 정도로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포항 지진으로 재난대처 당국에 신고·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실제 포항을 비롯한 지진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 지역에서는 놀란 시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고, 아파트 외벽이 갈라지면서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액자가 떨어지거나 책이 쏟아지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귀가조치 시켰다.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진 다음날 ‘경북 포항 지진 발생 및 대처상황’을 통해 부상자 수를 발표했는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은 1500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특히 포항 일대의 고사장이 파손되는 등, 지진으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 정부는 원래 일정이었던 수능을 2017년 11월16일에서 일주일 뒤인 11월23일로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되기도 했다.

지진에 취약한 노후 건축물과 필로티 건축물

무엇보다 지진으로 인해 노후화 된 건축물이나 소규모 건축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소규모 건축물 중에는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구조’로 되어 있어 심각성을 더했다.

필로티구조는 대부분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등의 원룸형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지상 1층에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기둥만 설치해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2층부터는 철근콘트리트 벽식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필로티구조가 소규모 건축물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실정인데, 전국 도시형 생활주택의 88%가 필로티구조로 되어 있어 지진 발생 시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필로티구조가 적용된 소형 건축물은 주로 동간거리가 짧은 주택 밀집가에 위치하고 있어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날 시 건물이 붕괴돼 옆 건물에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 또한 비상시 구급차 진입로를 막아 인명구조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필로티구조는 설계를 지양하고, 필로티 건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소규모 건축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공비를 아끼려고 지하주차장이 아닌 필로티 설계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차원의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피해로 알 수 있듯, 사회기반시설과 노후시설이 밀집돼있고 인구도 많은 지역에 지진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포항 지진 이후 긴급 피해복구가 이루어져 많은 복구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불감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필로티구조는 기둥에 내진벽과 함께 콘크리트 상하부 철근을 감아 놓는 늑근을 더 보강한다거나 배관용 파이프나 자재 등을 기둥 속에 넣지 않는 구조로 지진에 대한 대응력 방안을 더욱더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년 역사를 지켜온 신라 건축의 비밀

전국을 뒤 흔들었던 지진으로 문화재에 손상을 입히지 않을까 불안감도 생겼다. 특히 역대급 지진이었던 경주지역 문화재 파손이 우려됐다. 

경주는 역사적으로도 지진이 빈발했던 지역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다음백과에 따르면 삼국시대 이후부터 1904년까지 역사에 기록되거나 관측으로 보고된 한반도 지진 발생 횟수도 2186회나 되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경주 지역의 지진에 관한 언급이 20차례 정도 나온다. 인조 17년(1689년)과 21년(1643)에는 “경상도 경주·울산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경상도의 대구·안동·김해·영덕에도 지진이 있어 연대(烟臺)와 성첩(城堞)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경주 문화재에도 피해는 있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주 지진으로 불국사 대웅전 지붕 및 오릉 담장 일부 기와가 탈락됐고, 석굴암 진입로에 낙석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첨성대의 꼭대기 돌이 심하게 기울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경주 전 지역을 뒤 흔들었던 지진이었지만 이 지역에 집중돼 있는 신라시대의 문화재들은 극히 일부만 훼손 돼 큰 피해는 없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역대급 지진에도 불구하고 첨성대는 견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자료=urban114]

과연 우리 문화재에 적용된 건축설계 비밀은 무엇일까. 문화재 전문가들은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과의 에너지 규모 차이,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었던 점 등을 꼽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첨성대의 지반은 흙과 돌로 번갈아 채워 다져진 상태로 기록 돼 있다. 이 지반 덕분에 지진 시 충격을 가해도 에너지가 튕겨져 나오지 않고 그대로 흡수돼 지진의 피해가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첨성대는 구조상 원형으로 되어 있어 돌을 안쪽으로 들여쌓는 공법으로 축조됐다. 원형 공법은 내진성능이 강한 형태다. 또 첨성대의 정자석과 비녀석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흔들림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우수한 내진설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맨 위쪽 최상단에 설치된 정자석은 서로 맞물려지도록 결구부가 형성돼 있어 지진에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불국사에도 지진 피해를 견딜 수 있는 건축 비밀이 있다. 바로 그랭이법과 동틀돌이라는 전통 건축 방식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그랭이 공법은 인공석을 자연그대로의 자연석의 모양에 따라 깎아 만들어 석축이나 건물을 지을 시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춰 맞물리게 하는 공법이다. 톱니바퀴를 연상케 하는 형태로 울퉁불퉁한 석재 사이에는 흙을 얇게 펴 깔았다. 

불국사는 이와 같은 그랭이 공법이 적용됐는데 지진 시 흔들림을 방지하고 마찰력을 줄여준다. 그랭이 공법은 실제로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주춧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틀돌은 경주지역에 자주 보이는 축조법인데, 돌을 깎아 석재 사이 못처럼 박아 넣는 돌을 뜻한다. 동틀돌을 땅 속 깊이 박아주면 지진 발생 시 흔들림이 건물 전체에 전달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밖에도 석굴암은 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의 힘에도 구조면을 따라 그 힘이 분산되며, 석가탑은 전후좌우 대칭을 이루는 중심축이 정확한 구도로 맞춰져 있어 지진 시 흔들림에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우리 문화재들은 지진이 발생해도 그 여파를 흡수 할 수 있는 건축공법을 갖추고 있었다. 신라인들의 건축기술과 지혜가 얼마만큼 높은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진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비를 못 할 경우 수천 명, 수만 명이 사망할 수 있는 최악의 천재지변이다. 전국을 뒤 흔든 경주·포항 지진으로 국내 건축물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증폭됐다. 국내 건축물은 내진설계가 대부분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지진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우려된다. 건축법에 미달되는 잠재적 건축물에 대한 안전불감증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잦은 지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첨성대까지 견고한 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의 건축지식과 경험을 본 받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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