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철회 농성/자료=urban114] 홈리스(Homeless)는 거리 노숙인에서 주거불안 계층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다. 이 개념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경우 주거상실 계층인 거리 노숙인, 쉼터이용 노숙인, 부랑인 복지시설 이용자, 쪽방 거주자와 주거불안 계층인 비닐하우스 거주자, 월세 거주자, 지하 거주자 등이 포함되는 주거빈곤 가구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중 노숙인이라는 용어가 부쩍 늘어나게 된 계기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이다. 수십 년 전부터 거지, 걸인, 부랑자, 넝마주이, 도시빈민 등과 같은 이름들로 불리던 사람들이 외환위기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실업자들로 인해 노숙인이란 용어가 늘게 된 것이다. ‘노숙자’는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길 로(路)자를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 사용되는 한자는 이슬 로(露)자다. 노숙(露宿)이라는 말은 원래 ‘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는 한자성어에서 유래한 말로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뜻이다. 부랑인 역시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며, 일정한 거주지가 없던 사람들의 상황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정부에 따르면, 국내 노숙인 수는 2015년 기준 1만 2,00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자활·재활시설이나 임시보호시설 등에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1만 1,000여 명가량 된다. 특히 시설 생활 노숙인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1,000여 명가량의 노숙인들은 그 숫자가 줄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홈리스를 단순히 거리와 시설에만 국한에서 생각하기엔 빈곤으로 인한 홈리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홈리스는 적절한 주거에서 살아갈 권리가 심각하게 박탈된 상태이다. 이는 거리에서 잠을 자는 형태나 사람이 살아가기 적절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는 곳에서 거주하는 것도 포함한다. 지난 2012년 6월 시행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숙인 정책은 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호하고 자립을 위한 기반을 조성해 사회로의 복귀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때 노숙인 혹은 부랑인으로 나눠졌던 용어는 거리생활자를 포함해 주거의 의미까지 포함한 넓은 범주의 의미를 담아 ‘노숙인 등’으로 합일됐다. 그러나 이처럼 법률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숙인 등’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을 내포하는 ‘노숙인’이란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거리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들을 ‘등’이란 표현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 역시 지극히 임의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하는 노숙인이라는 용어로 인해 한계 지어지는 정책 대상을 주거의 의미까지 확대하는, 그리하여 정책 대상을 늘리기 위한 홈리스라는 새로운 용어의 도입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정부에서도 이런 견해를 받아서 2009년 홈리스(Homeless)를 정책 용어로 쓰고자 했으나 한글운동단체에서 외래어 표기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해 용어 사용이 무산된 바 있다. 서울로 7017, ‘홈리스’는 갈 수 없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서울경제위원회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공중보행로 서울로 7017을 만들 때 처음에는 남대문시장 등 지역상인들이 반대했는데 사실상 대박이 났다”면서 “두 달도 안 된 사이에 200만 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역 서부 쪽은 경제가 침체돼 있었는데 도로와 사람이 연결되면서 그 일대가 완전히 살아났다”며 “이렇게 도시재생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7017 개장 전 남대문시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이 4만 800여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1.23배가량 방문객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로 7017은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의 산책로로, 또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는 관광지로 부상하며 쇠퇴한 서울역 인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홈리스에게도 그럴까? 서울로 7017이 철거가 아닌 재생으로, 자동찻길에서 사람길로 재탄생했지만 평등길로는 거듭나지 못한 듯 보인다. [서울로 조례안 독소조항 폐기 촉구 기자회견 모습/자료=홈리스행동] 이러한 공간을 탈바꿈하는 과정에 홈리스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점유해 왔던 공간의 변화는 홈리스에겐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서울시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그 주변에서 숙식하는 노숙인의 강제퇴거가 이뤄지고 있었다. 2011년 여름 강행된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는 서울로 7017의 다른 얼굴이다. 코레일은 이용객들의 민원 해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제공을 위해 노숙인 퇴거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2011년 7월 용역입찰 공고를 내고 서울역 특수경비용역을 고용했다. 홈리스는 그저 밀어내고 쫓아낼 대상일 뿐 이 공간의 기억을 함께 써온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2011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12년 서울시 노숙인 권리장전도 만들어지면서 노숙인의 권리는 성문화되었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에 사실상 노숙인 출입을 규제하는 조례를 제정하려 했다가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해당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에 제출한 ‘서울특별시 서울로 7017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보면, ‘눕는 행위, 노숙행위 및 구걸행위 등 통행에 방해가 되는 행위’(13조1항3호),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13조1항6호)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는 이런 내용의 조례안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및 녹지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상 서울역 주변에 많이 모여 있는 노숙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숙인 지원단체인 홈리스행동은 지난달 19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과 녹지를 이용할 권리는 노숙인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며 “인권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에 어울리지 않는 독소조항이므로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조례안을 심사한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는 ‘눕는 행위, 노숙행위 및 구걸행위’를 금하는 조례안 13조1항3호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삭제하는 게 좋겠다’고 서울시에 권고했고,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공공을 위한 조치라지만 이에 저항하면 범죄자 딱지를 붙이며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내 빈곤과 배제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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