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골, 대학과 손잡고 마을공동체 회복 이끈다 ①

정릉의 옛 이름과 배밭골의 유래
뉴스일자:2017-04-05 18:18:00

[대동여지도에 보이는 정릉과 정릉3동/자료=대동여지도(1861)]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3동은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에서 이름 붙여졌다. 남쪽으로는 돈암동과 도성 안으로 통하는 혜화문이 있고, 북동쪽에는 강북구 미아동과 접하며, 서쪽으로 북악터널(1971년 개통)을 넘으면 종로구 평창동이 이른다. 면적 7.47㎢의 정릉동은 정릉 1·2·3·4동의 행정동으로 구분된다. 성북구의 면적이 24.57㎢인 것을 감안할 때, 정릉동은 성북구 총 면적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제법 큰 동네이다. 그 크기만큼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정릉동은 곳곳을 부르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옛 이름을 간직한 정릉동

 

정릉 일대는 본래 살한이, 사을한이, 사아리 등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한자명으로 사한리(沙閑里), 사하리(沙河里), 사을한(沙乙閑), 사아리(沙阿里)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정릉이 생기면서 이 일대는 능말, 정릉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을 겪으면서 이곳의 명칭은 다른 마을처럼 여러 번 바뀌었으며, 숭신방 정릉계, 숭신방 정릉동, 숭신면, 숭인면 정릉리 등의 명칭으로 부르다가 1950년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현재의 행정구역이 정해지고 ‘정릉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정릉3동 일대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고, 마을이 형성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정릉3동 정릉시장 부근에는 ‘정도600년 원토백이’라고 스스로를 자칭하는 밀양 손씨들이 살고 있다. 정도(定都)란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을 서울로 정한 것을 말하며, 조선건국 후 600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말이다. 이곳은 ‘손가장(孫家庄)’, ‘손가정(孫哥亭)’이라고 부르는데 손씨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손가정에는 고려 말 손씨와 왕씨가 귀양을 와서 마을이 생겼고, 손씨들이 많아지면서 손가장, 손가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헌에서 ‘손가장, 손가정’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미 규모 있는 마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초반의 지도에서도 손가장(孫家庄)이라는 마을을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 문인인 이옥(1760~1813)은 북한산 아래 중흥사(重興寺)라는 절에 왔다가 손가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기록하며 동쪽에서 제일가는 동네라고까지 평가하였다. 손가정은 일찍이 마을로서 터를 잡은 동네였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정릉 지역의 인구 증가와 함께 손가정을 중심으로 한 현재 정릉3동 지역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름도 없던 동네, 배밭골

 

본래 손가정 주변과 정릉 주변 두 곳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살기 시작하더니 1960년대 이후에는 엄청나게 동네가 커졌다고 한다. 1965년경에 이르면 정릉동은, 동아일보 광고에서처럼 ‘교통이 편리하고 시장과 인접해 있으며 간선도로에는 합승과 뻐스가 운행되고’, ‘전기 및 상하수도시설이 완비된 신흥주택지’가 되어 번화한 시가지가 형성돼 있었다. 정릉동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정릉동의 옛 지명을 표기한 지도/자료=국립민속박물관, 정릉3동 민속지(2008)]

 

정릉 지역에는 수많은 골목에 길 이름이 붙여졌는데, 여기에는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 눈에 띈다. 정릉4동 일대를 지칭하던 ‘정짓말’은 ‘정진마을길’로, 문바위가 있어 ‘문박골’로 불리던 곳은 ‘문바위길’로 재탄생하였다. 새로 생겨난 마을인 배밭골도 ‘배밭길’이 되었고, 이밖에도 정릉시장길, 거북바위길 등이 있다.

 

새로 생긴 지명들은 정릉3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배밭골은 한국전쟁 이후 산 중턱에 집을 하나씩 지으면서 없던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배밭골은 이름도 없던 동네였고, 배나무가 몇 그루 있는 동네였는데 사람들이 토막(土幕)집이나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배밭골이라는 동네가 생겨났다. 이후 배밭골은 스카이아파트와 정릉연립 등의 큰 주거단지를 비롯해서 주택들이 즐비한 규모 있는 동네로 발전했으며, 현재는 또 다른 변화를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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