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피해자 현황/자료=한국여성정책연구원] 최근 강력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번화가로 유명한 강남역 인근의 화장실에서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특히 아동,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추후 처벌만이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고 불안감을 저감시키는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들이 절실하다. 연일 강력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나 기존 범죄와 달리 근래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는 충동적인 ‘묻지마’ 범죄로 예방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5대 강력범죄 중 나약한 여성을 위주로 저지르는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성범죄는 하루에 60.4건, 한 시간에 2.5건 발생한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약자에 속하게 되는 여성을 범죄의 피해자로 삼는 현상은 큰 비중을 갖는 사회문제이다. 여러 요인에 따라 많은 범죄자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만을 피해자로 선택하기도 한다. 범죄자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피해자로 삼는 경향이 있어 꾸준히 여성대상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가 여성으로만 한정되는 범죄로 초래한다. 많은 여성들이 혹시나 자신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을 꼽으라면 단연코 ‘안전’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소 국가론(Minimal State)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국민 안전에서 찾는다. 근래 도시환경설계기법인 범죄예방 디자인은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에 활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범죄 발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 내 41개 지역에서는 조명을 개선하자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데에 명백한 효과가 있었고, 보행자의 도로 사용률도 급격히 증가했다. 경찰활동 개선, 바닥포장 변화, 건물외벽 변화, 계층·연령별 시설 디자인 강화 등 다양하게 개선사항을 반영하여 범죄를 줄여나가는데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범죄예방환경설계 제도의 도입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는 1960년대 미국에서 선보인 이후 1970년대 초 미국의 오스카 뉴먼이라는 학자가 시행한 연구를 통해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그는 뉴욕 어느 두 마을의 주민 생활수준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범죄 발생 수는 3배가량 차이가 나는 현상에 의문을 품고, 두 마을의 공간 디자인이 범죄의 빈도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을 분석해 보면 강도, 절도, 폭행 등의 사건들은 대부분 노상과 주거지 인근에서 발생한다. 특히 폭력의 경우, 대부분 노상(38.7%)이나 주거지(10.9%)에서 발생하고, 성폭력도 주거지(17.6%)와 노상(16.6%)에서 주로 벌어진다. 즉 국민의 일상생활 공간과 거주지 동선 내에서 각종 범죄가 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범죄의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건축학이나 도시계획 관련 학자들은 도시환경의 적절한 설계와 효과적인 공간 이용으로 범죄의 불안감과 발생 범위를 줄이고, 삶의 질을 증대시키는 기법을 CPTED로 구체화했다. 범죄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만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문제, 즉 ‘어떤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리적 공간이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 방범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사나 셉테드를 적용한 건축물을 설립하는 건설사에서 인증을 신청하면 셉테드경찰관(ALO)이 3단계에 걸쳐 심사한 뒤 인증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수도 동경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인 롯폰기힐스와 미드타운의 모든 건물 외관을 투명한 유리로 설계, 건물 내부에서 외부 침입자를 감시할 수 있는 셉테드 기법을 적용하였다. 미국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조례로 셉테드를 명문화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경찰안전주택인증제도라는 일종의 셉테드 표준을 제정해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범죄예방환경설계 전략/자료=CPTED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북] 한편, 국내에서는 건축물과 건축설비 및 대지에 대한 범죄예방 기준을 마련한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를 2015년 4월 1일부터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동주택이나 학교, 오피스텔 등 일정한 용도·규모에 해당하는 건축물은 ‘범죄예방 건축기준’에 따라 설계하고 건축해야 한다. 이 기준이 의무 적용되는 건축물은 5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과 제1종·2종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동·식물원 제외) 등이다. 단독주택 및 500가구 미만 공동주택(아파트, 연립․다세대 주택) 등은 권장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건축물의 용도와 관계없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보행로는 시야가 개방돼 잘 보이는 곳에 배치 ▲창문을 가리거나 나무를 타고 건물에 침입할 수 없도록 건물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목 식재 ▲건축물 진입로에 충분한 조명 설치 등이다. 특히 공동주택의 경우 외부의 물리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성능 기준을 만족하는 창문을 설치해야 하며, 수직 배관설비는 지표면에서 지상 2층으로 옥상에서 최상층으로 배관을 타고 오르거나 내려올 수 없는 구조로 설치하도록 했다. 또 범죄자의 침입 감시를 위해 주차장과 연결된 지하층과 1층 승강장과 옥상 출입구 및 승강기 내부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1개소 이상 설치하도록 했다. 2016년 4월을 기준으로 10개의 광역 지자체와 52개 기초지자체에서 범죄예방 도시디자인 조례를 제정해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반 국민은 이런 기준이 현실에서 여전히 실효성이 없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2015년 4월 건축 기준 고시가 제정된 이후, 새로 건축 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한 경우에만 기준에 따른 검토의 대상이 되고,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준공 허가를 불허하는 근거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준 고시 이전에 설립된 건축물이나 공간은 이런 기준에 맞도록 시설을 보완하거나 개선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법률도 없다. 공공시설 외의 민간 시설의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기준에 맞추도록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CCTV나 비상벨을 확대 설치하는 수준에 머문다. 서울시가 25~49세 여성 1인 가구 5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한 질문의 응답자 77%가 ‘성폭력 등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꼽아, 여성 1인 가구 주거환경에 셉테드 적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도시환경의 공간계획과 시설디자인을 통한 일종의 범죄예방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 2012년에 실시한 마포구 염리동에 CPTED 적용이 실질적인 효과를 입증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여성 1인 가구 주거환경에 대한 CPTED 적용 선행연구는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 현 사회적 변화를 감안하였을 때 여성 1인 가구 주거환경에 대한 CPTED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