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의한 구도심 재활성화 ④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 현황과 미래
뉴스일자:2015-11-19 09:00:18

[공사 중인 건물과 새로 지어진 주택건물이 붙어 있는 베를린의 주거문제/자료=urban114]

 

베를린은 재미난 도시이다. 독일 전역은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되고 있고 인구는 줄고 있지만 베를린은 점점 젊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인구도 늘고 있다. 이런 인구 구조의 변화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로 인해 베를린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인구는 늘지만 그 인구를 수용할 만한 주택,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지불 가능한 저렴한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베를린의 현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도시의 현상도 도시의 인구 구조를 변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유래는 자가 교통의 발달로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도심 내에서 도심 외곽의 여유롭고 개인적인 주거공간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이들이 떠난 주거지들은 비교적 물질적 여유가 부족한 이들이 새로 옮겨오면서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영국,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양권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교외에 수영장이 딸린 개인주택에서 사는 부유한 백인들의 모습이 전자이고, 도심의 관리 안되고 버려진 주택에서 각종 범죄와 함께 살아가는 흑인들이 후자인 것이다.
 
그 다음 단계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앞서 말한 인구의 이동이 완료되고 자리 잡은 후, 도시가 황폐해지거나 아니면 오히려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다시금 인구 구성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간 자본이 다시 도심 지역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경제적 약자들은 그들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살아온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쫓겨나게 되고, 재개발된 도심은 다시 부유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순환되는 현상이며,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현재 베를린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 또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Pioniere라는 주체가 등장할 때 그렇다. Pioniere는 학생, 예술가, 서브 컬쳐 등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저렴한 월세 지역은 이들에게 특히 더 매력적인 삶의 장소이고, 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고 정주하면서 단순히 월세가 저렴했던 지역에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흥미로운 장소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 약자로 이 지역에서 살기 시작했던 이들이 경제적 강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경제적인 성장(학생에서 직장인의 변화)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를 겪으면서 발생한다.
  
즉, 외부인의 유입이 없더라도 크고 좋은 집에 대한 내부적인 수요가 늘기 시작한다. 물론 자본은 어김없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오고, 투자가들은 집을 구매해 신축·개조·개선·현대화 등을 통해 비싼 월세 주택으로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이 방식이 반복된 지역은 자연스럽게 부유층들의 지역이 되곤 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한 예일 뿐, 실질적으로는 거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도시의 재개발이 베를린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베를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비교적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 비해 약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Pioniere을 주축으로 적극적으로 그들의 주거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위축되었던 시기에도 여전히 수많은 투자자들은 더욱 머리를 굴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세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승승장구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독일은 법적인 제약만을 제외하면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그중 유독 베를린의 임대 주택들은 투자가들에게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정치권이 세입자를 보호하고 거주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밀려오는 투자자들을 위한 쾌적한 법적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2013년 베를린은 독일 내에서 가장 주택 임대료가 많이 상승한 도시로 조사되었다.
 

[Keine Rendite mit der Miete 운동 포스터/자료=http://keinerenditemitdermiete.blogsport.de/keine-rendite-mit-der-miete/]
 
언제부터 주택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을까? 삶을 살아가는 공간인 주택을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세입자는 한낱 살아있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베를린과 독일 전역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임대료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Keine Rendite mit der Miete 운동은 2012년 6월 18일 부동산 업계의 연례행사에 맞춰 이루어졌다. 그 행사는 단순 부동산 업계만이 참가하는 것이 아니었고, Bundesbauminister Peter Ramsauer와 도시개발 관련 정치인들이 참가하는 행사였다. 사실 데모 자체에 특정한 정치적인 요구나 제안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외치는 문구는 간단명료했다. 임대료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삶의 공간을 이윤의 공간으로 여기지 말고, 세입자는 투자가들의 살아있는 투자상품 혹은 필요할 때 꺼내쓰는 재고상품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특별한 선동도 제안도 없지만, 이 운동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개념에 잠식당한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입자 혹은 거주민으로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짓밟히는 경우는 바로 강제 철거 혹은 강제 퇴거로 삶의 공간을 잃게 되는 순간이다. 독일에서 강제 퇴거가 자세히 조사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당시 독일 전역에서 약 20,000번의 강제 퇴거가 집계 되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증가하며 2012년에는 약 25,000번의 강제 퇴거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 퇴거 명령이 있기 전이나 퇴거 명령이 내려졌을 때 자발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던 경우도 약 40,000번이 있었으니 실질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삶의 공간을 잃게 되는 경우는 매해 65,000번인 것이고, 현재에도 평일 하루 약 20번의 퇴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불특정 다수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도심 재개발 등의 도시개발은 불특정 다수의 희생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데, 이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함께 행동하고 저항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도시는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개발에 있어서 공권력의 남용은 베를린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방식이 한국에서의 대놓고 집행되는 대규모 재개발보다 더 교묘하고, 치밀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베를린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들의 주택을 지키고, 문제를 알리고 동시에 그들의 안전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지만, 인구는 늘고 저렴한 임대 주택의 공급은 줄어드는 등의 자료가 말해주듯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들이 함께 연합하는 방식은 주로 크고 작은 공동체 혹은 연합체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새로운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재미난 점은 이 공동체와 연합 또한 서로가 서로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좋고 저렴한 집에 살고 싶은 것은 수많은 세입자들이 하고 있는 당연한 생각이다. 또한 주택 임대를 통해 돈을 더 벌고 싶은 것도 많은 임대인이 하는 당연한 생각이다. 한가지 대상을 놓고 서로 상충되는 생각을 하며, 한쪽은 안정된 한쪽은 안정된 삶을 위한 권리를 외치고, 다른 한쪽은 사유 재산의 보호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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