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안전한 ‘안심마을 만들기’의 필요성과 실현 방안 ①

보행안전과 마을 만들기
뉴스일자:2015-05-01 09:20:55

1997년 초에 서울시 보행조례가 제정되고, 조례의 규정에 따라 1998년에 서울시 최초의 보행환경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보행환경 기본계획에는 시민의 보행권을 증진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가 해야 할 일들이 ‘보행환경 개선 10대 과제’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었다. 10대 과제의 내용을 보면 ‘기초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3개 사업, ‘대중교통 관련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2개 사업, ‘보행공간의 확대’를 위한 3개 사업, ‘장애인 보행여건 개선’을 위한 2개 사업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기초 보행환경 개선사업에 ‘우리 동네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의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우리 동네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민선2기의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사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동네 보행환경 개선사업은 누락되었고, 대신 ‘걷고 싶은 거리 시범사업’ 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보행환경 개선의 출발이 우리 동네에서 시범거리로 바뀌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 서울시로서는 자동차 위주의 보행환경을 사람 위주로 바꾸는 초기단계에 있어서 뭔가 눈에 띄고 파장이 큰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많은 동네의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서울시와 자치구의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 거리를 상징적으로 바꾸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 따라 서울시 시범거리로서 돈화문길이 선정되었고, 자치구들도 시범거리를 하나씩 선정하여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걷고 싶은 거리 시범사업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차도를 좁히고 보도를 넓혀 보행자를 더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보도 위에 난립해 있던 보도시설물들도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보행자의 편의를 증진하고 쾌적성을 높였다. 거리의 변화를 보면서 시민들의 감수성과 생각도 함께 바뀌어 왔다. 보행자의 권리에 대해서, 또 보행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졌다.

 

마을의 보행환경이 열악한 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길의 대부분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일반 주택가도 그렇고 아파트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동네의 넓은 길, 좁은 길 할 것 없이 대부분을 차도와 주차공간으로 내어준 데다 좁은 길까지 차가 오가는 바람에 어디 한 곳 편안히 걸을 수 없다.

 

[거주자 우선 주차 지역/자료=서초구청]


반면 선진국에서는 요즘 ‘차 없는 주거단지(car-free housing)’ 만들기가 유행이다. 주거지를 만들 때 처음부터 승용차 없이 살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동차로부터 해방된 주거단지를 만들고, 필요할 경우에는 셔틀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한다. 마을의 보행환경을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은 ‘거주자우선주차제도’다. 이 제도는 도심의 심각한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택가 이면도로에 주차 구획을 긋고, 주민들에게 저렴한 사용료를 받아 주차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96년에 서울시 일부 지역에서 처음 실시된 이후 2002년부터 서울시와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얼핏 보면 부족한 주차공간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게 한 매우 합리적인 제도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이공간이자 주민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주택가 골목길을 자동차에게 다 내어주었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은 조치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유공간의 사유화에 있다. 주택가 골목길과 이면도로는 특정인의 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땅이고, 함께 써야 할 공유공간이다. 거주자우선주차는 이러한 공유공간을 마치 개인공간처럼 쓰게 했다는 점에서, 또 공유공간을 사유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 인식하게 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태평로와 영국 런던의 안전섬 유무 비교/자료=urban114]

 

마을을 걷기 힘든 곳, 걷고 싶지 않은 곳으로 만든 두 번째 원인은 횡단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횡단보도는 찻길을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매우 긴요한 시설이다. 따라서 횡단보도는 필요한 곳마다 설치되어야 하고, 보행자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거나, 횡단보도는 있어도 신호나 세부설계상의 문제들로 인해 보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교차로마다 모든 방향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 곳이나 세 곳만 설치되어 있어 길 건너기가 불편한 곳이 많다. 네거리에는 네 곳, 삼거리에는 세 곳 모두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하고, 보행자의 통행이 많은 곳에는 대각선 횡단보도를 설치해서 한번에 길을 건널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도로의 폭이 넓은 곳에는 횡단보도 중간에 안전섬을 설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섬이 설치된 횡단보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횡단보도의 보행신호가 충분하지 않거나, 신호주기가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에 있는 단일로 횡단보도의 경우 교차로와 같은 신호주기를 적용하여 보행자신호를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도로 폭 20여m 내외 횡단보도의 신호주기를 일반 교차로처럼 150여 초로 설정할 경우, 녹색 보행신호는 불과 30초 남짓이고 나머지 2분은 적색신호여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호주기를 짧게 하고 있기는 하나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횡단보도 신호는 여전히 자동차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사람 위주의 도로설계 사례: 진입구 좁히기와 차도 꺾기/자료=urban114] 

 

코펜하겐 시는 1962년에 도심부 보행화 사업을 처음 시작하였다. 도심부의 주차장 일부를 보행광장으로 바꾸고, 도로의 일부 구간을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차 없는 거리로 만든 뒤, 매년 이런 보행자구역을 점차 늘려갔다. 1962년 당시 도심부 전체 면적의 1%에 불과하던 보행자구역은 점차 늘어 현재에는 10%를 상회하고 있다.

 

마을공간도 세심하게 살피면 보행자구역으로 바꾸어갈 여지가 있는 곳이 많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중에는 차량통행을 제한해도 지장이 없는 곳이 많고, 주택가 골목길과 이면도로에서도 차도와 주차공간을 줄이고 보행공간을 늘릴 여지가 있는 곳이 많다. 서울 인사동처럼 보행자의 통행이 많은 시간대에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시간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덕수궁길 보행전용거리/자료=urban114]

 

또한, 마을에서부터 ‘횡단보도 개혁운동’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횡단보도 설치에 인색한 나라도 없다. 미국과 일본·영국 등 선진국들은 대부분 횡단보도 설치에 관한 법규와 기준들이 상세히 마련되어 있다. 교차로에는 당연히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것이 원칙이고, 주택가의 경우에는 어디든 건널 수 있도록 일부러 횡단보도 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 차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하도록 법으로 정해 두고, 횡단보도의 다양한 유형과 상세한 설계기준을 마련해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횡단보도 설치에 대해 소극적이다. “200m 이내에 횡단보도, 육교, 지하도를 병행 설치하지 말라”는 법조항(「도로교통법 시행규칙」제11조)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있고, 안전섬 없는 횡단보도가 다반사다. 횡단보도의 보행신호 또한 기준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횡단보도를 필요한 곳마다 설치하고, 신호주기나 보행자 신호시간을 보행자 위주로 개선하는 일을 주민운동 차원에서 전개해야 한다. 마을의 보행환경을 진단하고, 횡단보도가 필요한 위치를 찾아 경찰청에 건의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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